밴라이프에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들을 보면 매일 아름다운 정박지에 차를 세우고 밴을 예쁘게 꾸민 뒤 예쁜 옷을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살것 같지만 실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들 마다 다를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전에도 설명했지만 보통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밴라이프를 풀타임으로 하다보면 집에서 지내는 것과 다를바가 없어진다. 이동을 하지 않거나 평범한 정박지에서 지낼 때에는 집에서 지내는 것 처럼 하루종일 뒹굴거리게 된다는 말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온라인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도 검색해야 하고 나라를 옮겨 다닐 때 마다 도로 정보나 법규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비가 오거나 할 일 없는 밤에 뒹굴거릴 때에는 인스타그램을 하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에서 밴을 완성하고 출발할 때 즈음 가장 저렴한 3(Three mobile) 심카드를 샀다. 저렴했지만 영국 내에서 잘 터지지 않아서 한번도 써본 적이 없던 통신사였는데 영국 내에서 데이터가 무제한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무제한이라는 매장 직원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30파운드를 주고 샀다. 하지만 프랑스에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에게 속았다는걸 금방 알게 되었다. 결국 파리의 스타벅스를 전전하면서 열심히 검색한 결과 프랑스에서 19.99 유로에 데이터 100기가 그리고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120국가에서 25기가 데이터를 쓸 수 있는 Free mobile 심카드를 구했다.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가장 저렴한 가격에 가장 많은 데이터를 유럽 전역에서 걱정없이 쓸 수 있는 심카드이다.
하지만 19.99 유로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엄청난 금액이었기에 심카드를 하나만 사서 핫스팟을 이용해 나눠썼다. 100기가도 많지 않을거 같았지만 밴라이프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린 핸드폰과 멀어졌다. 카톡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는 일도 줄어들었고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살자는 계획은 거창하기만 했을 뿐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마저도 소원해졌다. 그래서 소에 밟힌 뒤 도망치듯 뷰 오브 알프스를 떠났을 때에도 여전히 우린 90기가에 가까운 데이터가 남아 있었다. 너무나 소중한 19.99유로의 뽕(?)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남은 90기가의 데이터를 다 쓰기 위해 뷰 오브 알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위스로 바로 넘어가지 않고 남쪽으로 향했다.
뷰 오브 알프스를 떠나자 내리막길이 계속 되었다. 산을 내려가는 듯 했다. 여전히 풍광은 너무 아름다웠고 날씨도 화창했으며 종종 지나치는 마을은 프랑스보다 스위스 집 모양에 가까워 보였는데 유럽을 다니다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산에서 계속 내려갈수록 날씨는 점점 흐려졌다.
일주일 가까이 자연 속에만 있었으니 물도 채워야 했고 화장실도 비워야 했으며 맛있는 것도 먹고 싶어졌다. 그리고 남은 핸드폰 데이타 90기가도 다 쓰고 프랑스를 벗어나기로 했으니 국경 근처 도시에서 며칠 지내기로 했다. 산에서 완전히 내려와 국도를 계속 따라서 달리다 보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날이 어두워질 때 즈음 유명한 몽블랑 산이 있는 제법 큰 스키리조트 도시인 샤모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시는 상당히 아기자기하고 예뻐보였고 여름이였는데도 여행객들이 많아보였다. 너무 오랜만에 사람이 많은 도시에 온지라 흥분이 된 우리도 얼른 섞여서 여행자 모드를 즐기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박지를 먼저 찾아야 했기에 잠시 참기로 했다. 보통 도심은 오래 정박할 곳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스키리조트 도시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겨울에 캠핑카로 샤모니에 장기간 머물면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에 어렵지 않게 정박할 곳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름이라 캠핑 앱에 나와 있는 정박지는 모두 막혀 있었기에 우린 샤모니 도심을 좀 더 벗어나야만 했다.
우린 도심에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산 중턱 우리와 비슷한 캠핑카들이 띄엄띄엄 주차가 되어 있는 주차장에 정박을 했다. 구름이 낮게 깔린 채 산을 지나가며 비를 추적추적 뿌리고 있었던 그곳은 그리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즈음엔 시간이 너무 늦었고 배도 고파서 일단 하루 자기로 했다. 저녁을 대충 먹고 침대를 펼쳤는데 왠일인지 밴 안이 좀 썰렁하게 느껴졌다. 산으로 둘러싸인데다가 고도가 높아서인지 밤 기온이 서늘하다 못해 추웠다. 비를 좋아하진 않지만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천국 같은 날씨였다.
우중충하고 경사진 주차장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화창한 날씨에 햇빛을 맞으며 일찍 샤모니 도심으로 돌아왔다. 밤새도록 캠핑앱을 뒤져서 우린 가장 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몇 군데 찾아놓고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장 적당한 정박지를 찾아냈다. 엄청나게 큰 비포장 주차장의 구석에 가장 평평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좀 편해지는 듯 했다.
보통 도심의 주차장에 정박을 할 때에는 되도록이면 아침 일찍 가거나 저녁 늦게 가야 좋은 위치에 정박할 수 있다. 평일 낮에도 개를 산책 시키거나 취미 활동을 하러 온 사람들의 차들로 주차장이 가득차기 일수이고 이렇게 지역 주민들의 차들로 가득할 때에 캠퍼밴을 몰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차를 돌려 나오기도 힘들 정도로 좁거나 막혀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은 캠핑카를 주차하면 안된다는 팻말이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이젠 제법 익숙해진 우리는 크게 개의치 않고 주차를 했다. 실제로 우리 외에도 많은 밴라이퍼들이 주변에 주차를 하고 의자를 펼쳐 놓은 채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주차장은 무료였고 근처에는 공중화장실이 있어서 물을 받거나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게 완벽한 정박지였다. 며칠 지낼 심산으로 밴을 완벽하게 집으로 셋팅을 한 뒤 우린 오랜만에 여행객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 샤모니를 구석구석 걸으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사람들이 가득한 도심을 걸어다니면서 여행을 하는걸 우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섞여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는 기분 때문이었고 우리가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자세하게 말로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자괴감 같은 것이 밀려 올 때가 있었다.
밴의 앞 바퀴를 고치고 파리 샹젤리제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한참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해 두 개의 커다란 캐리어에 빨래를 가득 채우고 빨래방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밴을 세워두었던 파리의 정박지 근처에 빨래방은 하필 화려한 샹젤리제 근처의 쇼핑거리를 지나가야만 했다. 새카맣게 탄 피부에 더위에 땀으로 젖은, 며칠이나 입었는지 모를 평범한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캐리어를 끌며 터벅터벅 걸어서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명품 상점들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자니 왠지모르게 슬픈 감정이 느껴졌다. 우린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고 있었지만 혜아도 내내 말이 없었다. 애써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 이들보다 행복하다고 위로해보려 했지만 크게 소용은 없었다.
여행객으로 가득한 샤모니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의 샤모니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과 산 위의 어름동굴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돈을 쓰며 자신의 여가 생활을 즐기려고 안달이 나있는 듯 했지만 우리는 기름값을 신경 써야했고 식비를 계산해야 했으며 앞으로 또 생길지 모르는 경제적인 위급상황에 대비해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기에 여행객들과는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우린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없어서 행복한 밴라이퍼이다. 자그마한 맥주 두병을 가방에 챙겨넣고 예쁜 공원을 찾아가 햇살을 맞으며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행복했고 저렴한 슈퍼마켓에서 먹을걸 살 수 있어서 기뻤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하게도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의 통장에서 꼬박꼬박 돈을 빼나갔고 쉥갠 조약국에 머물 수 있는 3개월의 기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풀타임 밴라이프는 낭만과 현실의 벽이 같이 공존 하는군요
항상 꼬옥 붙어 다니나봐요 ㅜㅜ
잔인한 현실이라는데 두번째 읽으며 힐링이 되는 이유는 …나의 로망을 간접 체험하고 있기때문에 ㅎㅎ
사랑이 간식비 조금 보탭니다
언제나 저희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힐링이 되신다니 너무 영광이에요~ 후원도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글과 영상을 올리겠습니다 ^^
영상도 글도 잘 보고 있어요. 삶은 어디서도 계속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어디서든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기! 오늘도 힘내세요~ 여름에 코로나 잠잠해지면 힘내서 다시 겨울을 대비하자구요! ㅜ 가을부터 또 유행한다는 말이 있어요.. 식사 잘 하시라고 ㅎ 어른이들 식비 좀 보내요~~!
아무리 친척이지만 우리 이제껏 한번 봤는데….정말 고마워요 ㅜㅜ 곧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후원에 힘입어 한국으로 갈 생각이에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영상이랑 글들 계속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