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국경을 통과했을 땐 3월 말이었고 민박집을 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 이사한건 4월 말이었다. 집을 구하는게 쉽지 않을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한달이나 걸릴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밴이 있었기에 집을 구하는 동안 지낼 곳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크로아티아에서 밴라이프를 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민박집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지난 해 여름에 왔을 때에도 느꼈던 점인데 여름 한 철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크로아티아인들에게 캠핑카는 그리 달가운 여행객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료로 정박을 하거나 물을 버리고 채울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나 혼자라서 물도 적게 쓰고 변기가 가득 차기까지 오래 걸릴테니 일단 걱정은 그때가 되면 하기로 하고 스플리트의 구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해변가에 정박했다.
혜아가 파리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탄 이후로 크로아티아만 바라보며 거의 쉬지 않고 일주일 가까이를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기에 스플리트의 해변가에 정박을 하고나자 그제서야 한동안 혼자 밴라이프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에서 혜아를 만나기 훨씬 전 부터 나 혼자 밴에서 살 계획으로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이었기에 내심 기대가 됐다. 조용히 아침에 눈을 떠 창문으로 쏟아지는 바닷가 햇살을 맞으며 차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앞에 걸터 앉아 방금 내린 커피를 책 한권과 함께 음미하는 그런 ‘솔로 밴라이프’가 기대됐다.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보며 밴 앞에 테이블을 펼쳐놓고 구운 생선에 와인을 곁들여 먹으며 해변에서 뛰어노는 사랑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사라지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밴을 정박한 해변은 밴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곳이었다. 아담한 그곳은 아직 이른 봄이라 사람 한명 없이 한적했지만 눈부신 태양으로 낮에는 모래사장이 한없이 반짝거렸고 바닷물은 밑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으며 밤에는 고요한 파도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SNS에서 볼 수 있는 밴라이퍼들 처럼 문을 활짝 열어 테이블과 의자를 감각있게 펼쳐놓고 느낌있게 달아 놓은 알전구 주위로 어닝을 드리운채 수영복만 입고 일광욕을 즐길 수 있겠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이곳에 하루 이틀만 머물 다 떠난다면 상관 없겠지만 집을 구하는 동안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어야만 했다. 노지 캠핑은 많은 유럽 국가에서도 불법이고 숙박업이 생업인 현지인들이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쫓겨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공짜로 정박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 크로아티아에서 겨우 찾은 곳이었기에 더욱 더 조심해야만 했다. 때문에 사랑이랑 산책을 나가거나 집을 보러 가는 때를 제외하고는 문을 열지 않았다. 낮에는 지역 주민들이 산책을 하러 차를 끌고 해변으로 왔기 때문에 창문의 블라인드도 왠만해선 올리지 않았다. 밤에도 사랑을 나누고 싶어 달아오른 청년들이 몰고온 차들이 해변 이곳저곳에 숨어 있었기에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신경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편하게 문열고 지내면서 이곳저곳 옮겨 다녀도 됐을거 같았는데 사실 며칠 전 크로아티아 국경을 통과하면서 입국 거절을 당하고 다음 날 다시 통과하기 까지 겪은 마음고생과 정신적 고통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 같다. 그 예민함은 크로아티아에서 지내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사랑이는 더 이상 밴 안에서 오줌을 누지는 않았지만 오줌이 마려울 때 어떻게 해야 나를 데리고 나갈 수 있는지 모르는 듯 했고 나도 그런 사랑이의 서투른 표현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십분이 멀다하고 밴 안에서 끙끙 거리거나 짖어대는 사랑이를 데리고 해변가를 걸어다녔다. 어차피 문만 열면 해변이 펼쳐지는데 십분 마다 나가는게 뭐가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이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나에게 밴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며 들락날락 하는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매번 나갈 때 마다 창문을 살그머니 내다보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을 한 뒤 어쩌다 사람이 있으면 밴 근처에서 멀어질 때까지 나가지 않고 기다렸고 사랑이는 빨리 나가자고 졸라댔다.
이렇게 혼자 하는 밴라이프는 모든게 스트레스였지만 어찌 되었든 스플리트의 한적한 해변가는 최고의 정박지였고 밴은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며 생각도 하고 계획도 세울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햇볕은 커다란 아이맥을 돌려 작업을 하기에 충분한 전기를 주었고 밤에는 바닷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먹을게 떨어지면 그냥 차를 몰고 마트로 가면 됐고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문을 열고 나와 해변가에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 중에 최고는 스냅 사진 촬영을 위해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주 수입원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들어오는 스냅사진 촬영 일은 지갑 사정에 큰 보탬이 되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에 들어오면서 벌금을 내고 타이어를 교체하느라 동생에게 빌린 돈도 거의 다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크로아티아의 날씨는 따뜻해지고 있었고 여행시즌이 점점 가까워지며 스냅 예약 문의도 조금씩 많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모든 문의 메세지가 실제 예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혜아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스냅 홍보 포스팅 외에는 아무런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3월 말 예약을 두 건이나 받게 되었다.
두브로브니크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예약 날짜보다 며칠 일찍 가서 미리 그곳의 시내와 그렇게 유명하다는 스르지산 꼭대기를 둘러보기로 하고 스플리트 해변을 떠났다.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한적한 국도는 쉴새 없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고즈넉한 크로아티아 시골 마을이 드문드문 지나가다 갑작스레 깎아지르는 절벽과 투명한 푸른 바다가 펼쳐졌고 다시 조용한 마을로 들어서기를 반복했으니까 말이다. 한참을 달려도 끝이 없는 이국적인 크로아티아 풍경에 눈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지만 내 머릿 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사이에는 국경 검문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불과 15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길이의 보스니아 땅이 끼어 있어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국경을 각각 통과해야만 했는데 지난 번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국경에서 겪었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던 나에게 두 번의 국경 검문소는 두 배의 두려움이었다. 내 옷은 여전히 허름했고 남자 혼자 타고 있는 밴은 충분히 의심스러워 보였다. 눈부신 크로아티아의 풍경들은 국경에 가까워질수록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나 국경 검문소를 두려워 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우리 밴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날 부터 우리의 영국 자동차 보험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았다.
영국의 화물 밴 보험은 엄청나게 비싸다. 밴을 운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차를 험하게 몰 뿐만 아니라 사고도 빈번하고 또 문을 뜯고 화물칸에 실린 물건을 훔쳐가거나 밴을 통째로 도난 당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 보험비는 150만원을 훌쩍 넘었다. 그에 반해 캠핑카 보험은 20만원 정도로 훨씬 저렴했지만 그 보험에도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주로 사용하는 승용차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고 캠핑카는 레저용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보험료도 천정부지로 치솟긴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우린 영국에 있는 동안 앱으로 단기 보험을 들어서 다녔다. 훨씬 편하고 저렴했지만 그 당시엔 유럽 지역은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서 결국 무보험 차량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사실 아무리 유럽연합국가라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온 차량의 보험가입 유무를 전산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추측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국을 떠나온 초반 지나가는 경찰만 봐도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우린 보험을 들지 않았다는 사실 조차도 잊어버릴 정도로 용감해졌다. 영국 번호판을 단 차를 세우는 경찰은 거의 없었고 국경들도 활짝 열려 있었지만 가끔 검문을 받아도 보험증서를 요구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번 슬로베니아 국경에서 크로아티아 경찰들은 보험증서를 요구했고 내가 보험은 들었지만 관련 서류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자 그걸 가지고 계속 문제를 삼았었다.
때문에 두브로브니크를 향하고 있는 내 가슴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빠르게 뛰고 있었다. 또 보여달라고 하면 어쩌나, 혹시나 내가 보험이 없다는걸 알고 차를 압류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갖은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상상하고 있을 때 즈음 굽이치는 해안 절벽을 따라 난 왕복 2차선 도로의 끝에 파란 철골 구조의 국경 검문소가 나타났다. 아직은 비수기라서인지 주변에는 차가 없었고 난 보험증서를 보여달라고 하면 뭐라고 둘러댈지 아직 생각해 두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검문소에 도착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