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밴라이프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획은 물론이고 목적지도 없었던 우리는 이동하고 싶을 때 이동했고, 쉬고 싶을 때 쉬었다.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렀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거나 생각없이 산다는 말은 아니다. 하고 싶은대로 하는 대신에 그 결정에 책임을 졌고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행동했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에 대한 결과였기 때문에 그 결과가 어떻든 후회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린 싸울 일도 없었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다.
한국의 맛을 느끼자며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밥을 먹은 것 때문에 모기떼에 쫓겨 알 수 없는 곳까지 왔지만 우리가 결정해서 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비난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더운 여름을 보내기에 너무나 좋은 장소였다. 두 세 걸음 앞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나무 그림자 아래에 주차해 둔 밴은 물놀이를 즐기며 지내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래서 우린 모기떼에 쫓겼기 때문에 이런 곳을 올 수 있었다며 좋아했다. 이러한 생각이 밴라이프를 지금까지 계속 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강가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지만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혜아는 조금 심심해졌고 냉장고가 없는 우린 오기 전에 사둔 식재료도 다 떨어졌기 때문에 삼일 째 되는 날 장도 볼 겸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 역시나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핸드폰으로 가까운 마트를 찍은 뒤 출발했다. 그렇게 가는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프랑스가 특히 더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시간이나 목표에 쫓기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그래서 시야가 더 넓어져 이동하면서 주위를 둘러볼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생전 처음보는 색깔의 호수를 보고는 무작정 밴을 세웠다. 아직 핸드폰에 표시된 마트까지는 거리가 한참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산 속에 파묻여 있는 듯한 모습의 호수 이름은 낭투아(Lac de Nantua)였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평온한 낭투아 호수 주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스위스에 가까워지고 있어서인지 전에 있었던 강보다 덥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수영 금지 팻말 바로 옆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고 앉아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린 피크닉을 즐길 음식이나 수영복이 없었지만 여전히 호수를 즐기고 싶어서 오랜만에 사람들 속을 걸어다니고 사진을 찍으며 문명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우린 밥을 먹어야하고 밴에 물도 다 떨어지고 있으며 잘 곳도 찾아야하니 오래 있을 순 없었다.
밴라이프는 항상 그렇다. 항상 식재료와 물은 며칠 분 정도가 남아 있는지, 화장실과 오수는 언제쯤 비워야 할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이동 중에 우연히 좋은 정박지를 찾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스마트폰 앱으로 정박지를 검색해서 찾아가도 사진과 다르거나 현재는 폐쇄된 곳들이 허다했기에 정박지 찾는데 시간을 많이 써야만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동 중에 아름다운 도시나 풍경을 만나도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낭투아 호수 근처에서 정박할 곳을 찾아봤지만 작은 마을인데 관광객은 많아서인지 밴을 주차할 적당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린 마을 안에 있는 작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근처 서비스 존에서 물을 받은 뒤 다시 길을 떠났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니 우리는 스위스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국도 주변은 높고 뾰족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알프스 산맥의 눈이 녹아 내려와서 흐르는 듯한 강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낮의 온도도 살짝 내려간 듯 했지만 여전히 더웠다. 하지만 우리의 기분은 너무나 좋았다. 아름다운 호수를 봐서 행복했고 날이 조금 선선해져서 행복했으며 먹을걸 잔뜩 사둬서 행복했기 때문이다. 우린 그렇게 사소한 것에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며 이름 모를 산들과 마을들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산중턱의 절벽 암석을 깎아서 만든듯한 성을 만났다.성은 국도 옆 절벽에서 부터 머리 위 산꼭대기까지 절벽을 따라 뻗어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그 절벽을 따라 암벽등반을 하고 있었다. 그런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게 나의 성격이지만 이런저런 우리의 상황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걸 알기에 그냥 성만 둘러보기로 하고 밴을 세웠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Fort l’Ecluse 성 안에는 예쁜 식당과 카페 그리고 암벽등반을 할 수 있는 장비 등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었다. 암벽등반을 너무나 해보고 싶었지만 앵겔지수가 한껏 높아져 있는 우리에겐 사이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른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고 있는 중이서 다 둘러보고 돌아가려는데 성의 문 앞에 오늘 저녁 재즈 공연이 성 안에서 열린다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재즈를 좋아하는 혜아를 위해 공연을 보고 가기로 했다. 성의 주차장에서 하루 지낼까 생각해보았지만 산의 절벽을 깎아 만든 성답게 주차장도 온통 경사가 져있어서 잠을 자는건 불가능했다. 대신에 공연까지 1시간 정도가 남아 있어서 우린 주차장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낮에 호수가 예뻤던 마을에서 산 닭으로 닭도리탕을 해먹고 서둘러 성으로 돌아가 길쭉한 의자들을 꽉 매우고 앉아 있는 사람들 속에 섞여 해가 질 때까지 공연을 즐겼다.
콘서트 한번 가본적 없는 나에게 야외 재즈공연은 너무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것도 프랑스의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오래된 성 안에서의 콘서트라니. 재즈 피아노를 전공하였으며 파리의 재즈 카페에서 재즈 공연을 보는게 소원인 혜아에게도 공연은 색다른 행복이었던 듯 했다.
공연이 끝났을 때에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여전히 정박지는 정하지 않은채였다. 같이 공연을 즐겼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차를 타고 주차장을 떠날 때 우리도 서둘러 정박지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너무 완벽하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는 가까운 곳이면 충분한 곳으로 검색을 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이어서인지 주차장 보다는 자연 속 정박지가 많았고 그 중에 해돋이가 예쁘다는 곳을 찾아냈다. 그렇게 우린 모기떼에 쫓긴 이후 오랜만에 야간 드라이브를 즐겼다.
우린 야간에 이동하는걸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어두워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린 앞으로 밤에만 이동해야겠다고 얘기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덥지 않아서였다. 그동안 정신을 놓은 채로 땡볕에 땀을 흘리다 못해 싸면서 이동을 했는데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오니 에어컨이 없어도 전혀 상관 없으니 천국이었다. 우린 또 행복했다. 심지어 저멀리에서 폭죽까지 터지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달이 밝아서인지 12시가 다 되어가는 한밤 중인데도 주변이 환해서 널직하고 평평한 국도가 꼬불꼬불하고 경사진 좁은 도로로 바뀐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평소와 다르게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밝힌 많은 차들이 느릿느릿 굽이진 경사를 오르는 우리 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작은 언덕을 오르는가 싶었는데 좁고 구불구불한 경사로는 끝이 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 꼭대기인 듯한 평평한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차들이 그 좁을 길을 오르락내리락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참 전 멀리서 봤던 폭죽놀이를 보기 위해서 주변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산 위에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가 꼭대기에 올랐을 때 즈음엔 폭죽놀이가 끝나고 사람들이 내려가는 중이었다. 산의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은 우리가 올라왔던 길보다 완만했고 그 길을 따라 내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가 찾아둔 정박지도 내리막길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아서 사람들과 차들을 비집고 경사로를 내려가는 와중에 길을 내려가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우리 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를 태워 달라고 하려나 싶어 세워보니 이 길의 저 앞은 통제가 되어 막혀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가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길을 내려가는 차는 우리 밖에 없었고 그래서 우리가 경사로를 올라올 때 그렇게 많은 차들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린 그자리에서 차를 돌려 사람들이 폭죽을 구경하던 산 정상의 길가에 잠시 밴을 주차했다. 우리가 왔던 길을 돌아내려가기엔 너무 많이 올라 왔고 하루 종일 이동을 한 탓에 다른 정박지를 찾아 가는건 무리인거 같아서 일단 그 자리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폭죽놀이 구경꾼들이 사라지자 잠잠해졌고 우린 금방 지쳐 잠들었다.
정식 주차장도 아닌 길가에 평행주차를 해둔 탓에 난 이른 아침 눈을 떴다. 경찰이 와서 벌금을 물릴 수도 있고 지역 주민이 와서 문을 두드릴 수도 있으니 그 전에 밴을 그 옆 주차장으로 옮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단 한번도 그런 일은 겪지 않았지만 경험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침 잠이 많은 나는 내 자신이 대견할 정도로 퍼뜩 일어났다. 혜아는 밴에 시동을 걸고 지금 당장 고속도로를 달려도 깨지 않을 것 처럼 여전히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밤에 온 탓에 주차장의 상태와 현재 우리 밴이 있는 곳의 주변 환경을 알지 못했기에 직접 확인도 하고 스트레칭도 할 겸 밴에서 내리기 위해 옆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는 지금도 잊지 못할 평생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늘~유트브로만 벤라이프를 접하다 블로그에서 글로보니 또 새로운느낌이 있어좋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생을 꾸려가는 젊음이 부럽군요
항상 건강잘챙기며 보다나은 내일을 위해 화이팅을 보냅니다
밴라이프 초반, 영상으로 담지못한 것이 많아 글로 쓰기 시작했는데 부족한 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영상도 계속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