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 한번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골랐기 때문이지 돈을 많이 버는 일을 고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부유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엄마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된 시기에 나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엄마의 병간호에 드는 비용이 워낙 막대했기에 난 학비를 지원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만 했다. 물론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멍청했지만…
어쨌든 난생 처음으로 난 영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생활비’라는 것을 벌어야 했으며 내 ‘지출’을 관리해야만 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방값과 교통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하고 싶은 일에 모두 쏟아 부었으며 그러고나서 돈이 다 떨어져 전시회에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런던행 기차를 탈 돈이 없으면 그냥 무임승차를 해서라도 갔다.
그래도 난 아무렇지 않았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행복해서 돈이 없는 것 따위로 슬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밴라이프 또한 그랬다. 통장에 돈이 십만원도 채 남지 않아 프랑스 어느 마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지 못해 시동이 꺼졌어도 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기름이 떨어져 시동이 안걸리는 그 상황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하며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는(물론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적은 돈이지만)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과 몸살에 시달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월급을 받아 혜아와 맛있는 것도 먹고 사랑이와 파랑이에게 사료와 맛나는 간식 그리고 장난감을 사줄 수 있어 너무나 좋지만 나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극한을 향해 치닫고 있는 기분이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난 주변 지인들에게 나의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것은 ‘이것이 현실’이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가장 중요한 문제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남들도 이렇게 산다’라는 것으로 꾸며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도 똑같이 사는 이런 현실이 당신은 행복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