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 산수를 잘 못한다. 산수를 못하니 수학을 잘할리 만무하다. 암산은 당연히 못하고 계산기를 써서 계산해도 틀린다. 그정도로 못한다. 숫자는 방금 봐놓고서도 잊어버리는데다가 거스름돈을 받아도 내가 맞는 액수를 받은건지 그자리에서 계산을 못한다. 얼마나 못하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가? 그래놓고 한국에서 대학교는 이공계를 나왔으니 공부를 잘 했을리가 없다.
학창시절 수학 잘해서 뭐하냐며 비슷비슷한 놈들끼리 앉아 큰소리 치며 키득거렸지만 영국에서 밴을 개조하며 내 산수 실력이 얼마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깨달았다. 방금 치수를 재어놓고선 엉뚱한 길이로 잘랐으며 방금 아이폰으로 덧셈뺄셈을 해가며 계산을 하고 나서 전혀 엉뚱한 위치에 나사를 박았다. 덕분에 인테리어는 온통 삐뚤빼뚤했고 이곳저곳이 들쑥날쑥 했다.
그때야 혜아는 나랑 사귄지 한달 도 채 안되었을 때고 캠퍼밴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삐뚤빼뚤한 것도 나름 운치있다며 웃어 넘겼지만 혜아밴을 만들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고 끊임없이 floor plan를 짜고 있는 혜아를 보며 지금도 변함없이 형편없는 나의 산수실력으로 어설프게 밴 개조를 도와줬다가는 평생을 두고 씹힐게 뻔하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2)
러시아를 거쳐 중동을 지나 유럽까지 타고 갈 오토바이를 고르고 있다. 우리의 형편에 맞는 제일 저렴한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싶지만 이번 만큼은 기계적인 한계나 결함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어드밴처 바이크로 유명한 것들을 타자니 왠만한 중형차 한 대 가격 (중고 바이크 조차도 중고차 가격이다)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마음에 두고 있는 오토바이가 한 대 있긴하지만 너무 간지(?)가 안나는 것 같은 불만도 있고… 하여튼 그렇다.
독일에 밴을 세워둔 창고는 저렴하지만 그래도 한달에 50유로 씩 보관료를 주기로 했다. 물론 돌아가서 주기로 했으나 곧 일년이 다 되어 가니 그것도 점점 큰 돈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3)
곧 내 생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 이 후로 난 생일을 제대로 축하 받아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엔 중간 고사 기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하기에 애매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항상 내 생일 날이 그렇게 중요한 날이 아니어서였다. 남들 생일은 그렇게 쌔가 빠지게(?) 챙겨 줬으면서 정작 난 케잌 조차 제대로 받아 보지 못했다. 문득 생각해 보면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던 듯 하다.
엄마는 내가 생크림 케잌이 아닌 얇게 갈린 초코렛이 부드럽게 덮힌 케잌을 좋아한다는걸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군대에 신병으로 있을 때에도 다리가 부러져 군병원에 있을 때에도 엄마는 잊지 않고 그 케잌을 사왔다.
그리고 불효막심한 놈은 아픈 엄마를 두고 유학길에 오른 이후 단 한번도 제대로 생일케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내 머릿 속에는 오만 잡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