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로 들어선 파리는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단열재 덕분에 26~27도 정도는 밴 안에서 어렵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지만 한낮이 되면 바깥 온도는 30도에 가까워졌고, 밴은 그야말로 찜통이 되었다. 시원한 강가로 가고 싶기도 했지만 파리의 정박지는 그 어느 나라에서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웬만큼 돈이 많지 않고서야 어찌 샹젤리제 거리에서 살 수 있으랴. 우린 그렇게 무작정 파리에 눌러앉았다.
사실 돈이 거의 다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름값을 아낀다면 짧지 않은 기간을 버틸 수 있었기에 이제 한동안 샹젤리제 거리 한편에 머물면서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들 한다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영국을 출발하면서부터 쭈욱 영상을 찍어왔고 나름 예쁘다고 생각하는 풍경 사진들도 꾸준히 촬영했으며 이런 우리의 이야기를 블로그를 만들어 글로도 써나갈 생각이었다.
솔직히 그냥 영상 좀 만들어 올리고 글 몇 개 쓰면 반응이 슬슬 오리라고 생각했다. 곧 유튜브나 블로그의 광고를 통해 돈이 들어오기 시작할 거고 우린 걱정을 훌훌 날려버리고 밴을 타고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느라 몇 개 올리지도 못한 유튜브 영상은 기껏해야 하루에 한 두 명 정도 보는 수준이었고 그나마도 몇 개월 전 바뀐 유튜브 운영 조건 때문에 광고는 붙일 수 조차 없었다. 블로그도 참담하긴 마찬가지였다. 글을 하루에 하나씩 열심히 써서 올려도 광고비는 고작 몇 백원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0원일 때가 많았다. 심지어 광고비 누적액이 100불을 넘지 않으면 통장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는 여전히 수입이 없었다.
이 와중에 우리는 항상 행복했고 열심히도 글을 쓰고 영상을 올렸다. 지금 돌이켜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통장에 돈은 십만 원도 채 안 남았는데 왜 우리는 걱정에 사로잡혀있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았는지 신기하다. 오히려 파리에서 지내고 있어서 즐거웠고 가끔 밤에는 에펠탑 앞에서 삼천 원짜리 와인을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해가 뜨고 오전 9시를 넘어서면 더위에 눈을 떴다. 이케아에서 산 이불은 겨울용이어서 아무것도 덮지 않다시피 잤지만 해가 뜨면 차 안이 데워지기 시작해서 조금씩 견디기 힘들어졌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우리는 각자의 노트북과 텀블러 하나를 주섬주섬 챙겨 넣고 근처의 스타벅스로 향했다. 낮에는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더운 밴을 피해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눈치 보지 않고 하루 종일 지낼 수 있는 곳은 스타벅스 밖에 없었다.
스타벅스에서 가장 싼 커피를 할인해서 둘이서 나눠 마시기 위해 텀블러를 챙겼지만 매일 살다시피 하다 보니 커피값도 부담이 되어서 나중에는 몸에 좋고 가격도 저렴한 오렌지 주스 큰 팩을 하나 사다 놓고 아침마다 텀블러에 조금씩 옮겨 담아서 가져갔다. 사실 우리가 주문을 했는지 말았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우리가 스타벅스에 하루 종일 앉아서 하는 건 주로 어떻게 해야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디지털 노매드’가 되도록이면 빨리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찍어둔 영상들을 편집해 계속 유튜브에 올렸지만 좀처럼 오르지 않는 구독자 수에 금세 의욕을 잃었다.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써 올렸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사실에 흥미가 없어졌다. 당장 식재료를 살 돈이 없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우린 하루 종일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얘기했지만 그렇게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우리의 경험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고 글을 쓰고 사진으로 남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제 밴 라이프를 시작한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은 우리가 ‘디지털 노마드’로 당장 돈을 벌겠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파는 사기와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조바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돈은 없지만 우린 언제든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어 그 누구보다 행복하니까.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이 있고 떠날 수 있는 차가 있으니까.
우린 보통 점심은 건너뛰었고 완전히 허기진 상태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 즈음 스타벅스를 나왔다. 냉장고가 없어서 항상 매번 조금씩 장을 봐야 했다. 더운 여름 밴 안에서는 모든 게 금방 상하고 썩어 문드러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리의 생활물가는 엄청나게 비쌌다. 생닭 한 마리의 가격은 2만 원에 가까웠다. 때문에 우리의 주 메뉴는 파스타나 캔에 든 고기를 섞어서 만든 비빔밥이었다. 가끔 홈페이지를 디자인해주고 돈이 들어오면 그제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닭백숙이나 카레 등이 저녁 주메뉴였다.
그래도 조금은 서늘해진 밴의 문과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고 저녁을 만들어 먹는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다. 우리가 주차한 곳 바로 뒤편에는 미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이 환하게 북적였지만 전혀 부럽지 않을 만큼 우리의 저녁은 맛있고 행복했다.
이런 생활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돈이 바닥이 났고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정말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즈음 혜 아가 얼마 전 혹시나 해서 신청해두었던 구매대행 아르바이트에서 연락이 왔다.
얘기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당 🙂 다음 얘기도 기대 되네요!!!!
저희의 얘기를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부족하지만 열심히 써볼게요~^^
글도 잘쓰시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우직함과 진중함 그 용기가 부럽고 마이더스의 손이십니다. 남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더라구요^^ 혜아님이 사람볼줄 아시네요. 환상의 파트너에요. 지금 젊어서 고생이 평생을 가져갈 추억과 자산이 될것입니다. 나의 로망을 간접체험하며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늘 응원합니다.잘먹고 잘 버티세요.
글도 잘쓰시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우직함과 진중함 그 용기가 부럽고 마이더스의 손이십니다. 남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더라구요^^ 혜아님이 사람볼줄 아시네요. 환상의 파트너에요. 지금 젊어서 고생이 평생을 가져갈 추억과 자산이 될것입니다. 나의 로망을 간접체험하며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늘 응원합니다.잘먹고 잘 버티세요.
저희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혜아가 말씀하신 것 처럼 확실히 사람보는 눈은 있는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