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냄새는 기억을 소환 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이다. 어떠한 냄새를 맡는 순간 똑같은 냄새를 맡았던 예전의 그 시간과 장소 그리고 분위기까지 마치 사진을 보고 있듯이 눈 앞에 펼쳐지고 심지어 그 때의 내 감정까지 올라오면서 난 아주 잠깐이지만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까지 든다.
요즘엔 맡기 힘들지만 대형차의 배기구에서 나오는 매연냄새를 맡으면 어렸을 적 엄마와 손을 잡고 버스 안내양이 있던 시절의 버스 뒤를 지나가며 이 냄새가 난 좋다고 얘기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5층 짜리 시영 아파트와 양재천을 넘는 다리만 덜렁 있던 가난한 동네 개포동에서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과 함께 내가 버스 매연냄새가 좋다고 했다며 이게 무슨 의미인지 수다를 떨고 있던 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라벤더 향을 맡으면 2002년 여름 강원도 어느 계곡 옆 산 꼭대기에서 우연히 발견한 펜션에서 주인과 친해져 일도 돕고 드럼통 하나 놓고 고기를 구워 먹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펜션 한 켠에는 허브 밭이 있었는데 라벤더를 좋아한다는 아주머니가 잔뜩 심어 놓아서 라벤더 향기가 산을 온통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으지만 어떤 냄새를 맡으면 나의 스무살이 생각나고 또 어떤 냄새를 맡으면 엄마가 생각난다.
새벽에 사랑이와 파랑이를 산책 시키다가 똥을 치우기 위해 똥봉투를 꺼내 침을 묻혀 펼치려 마스크를 내리는 순간 내 콧속으로 새벽의 공기가 주위의 들꽃 향기와 함께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내가 안산으로 이사와서 안산을 기억할만한 냄새를 맡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이 냄새를 다시 맡으면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기억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