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집에 대한 애착이 없다. 물론 집에 머무르는걸 좋아하는 집돌이에다가 집안일을 하는 것도 재미있어하지만 그렇다고 집을 정성들여 꾸미거나 심지어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지는 않는다.
영국 유학시절 짧으면 6개월, 길어봤자 1년만 살고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법으로 정해진건 아니었지만 항상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그때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은 내가 생활을 하는 공간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 집을 구할 때에도 가격이나 생활공간만 맞으면 이사를 들어갔고 이사를 나올 때에도 아무런 감정없이 캐리어 두개에 짐을 모두 싸서 나왔다.
그런데 며칠 전 내가 유학을 가기 전까지 학창시절부터 오롯이 살아온 부모님 집에 갔을 때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빠는 사무실 겸 주거가 가능한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고 동생네 가족은 자신들의 생활에 맞는 집으로 이사를 가서 이제는 텅 비어버린 방 네개 짜리 아파트에 몇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러 간 것이었는데 난 슬퍼졌다.
우리 가족의 흔적은 여전히 집 안 전체에 가득 차 있는데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고 그렇게 밝고 따뜻했던 집이 너무나 어둡고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집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이 곳에서 살고 싶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그런 생각들과는 달리 매우 복잡했다. 현실과 감정이 머릿 속에서 계속 부딪히고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분명히 감정이 진정될거 같아서 난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언제가 때가 되면 이 또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