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턴 스포츠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개조를 시작하지 못했다. 날씨도 춥고 책을 써야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건 핑계라는걸 깨달았다. 4년 전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영국은 기록적으로 추웠고 민박집은 할 일이 넘쳐났고 밴은 오지게도 멀리 세워져 있어서 오가는데에만 몇 시간이 소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밴을 사자마자 거의 바로 개조를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못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며칠을 머릿 속에 맴돌던 중 문득 정답인듯한 생각이 떠올랐다.
밴을 개조하던 2018년도엔 나에게 밴 밖에 없었다. 집도 절도 없었으며 아쉬울 것도 없었다. 버는 돈은 모조리 밴을 개조하는데 쏟아 부었고 그러다 돈이 모자르면 밥 따위는 굶어도 되니 자재를 사는데 한푼이라도 더 쓰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다르다. 돈을 평펑 써서는 안되고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 나는 못먹더라도 혜아와 사파랑이는 굶겨서는 안된다. 렉스턴 스포츠를 개조하는 것 보다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차는 바로 코 앞에 세워져 있지만 장을 보러 가거나 안산을 가는 용도 외에는 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밴만 개조하던 2018년도가 훨씬 더 행복했을까라는 물음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그 때의 내 마음과 머리는 황량하게 메말라 있어서 밴개조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나갈것 같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