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와서 보니
밴라이프는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레저 생활 따위 처럼 인식되고 있는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것 같다.
우린 단지 가장 저렴하게 먹고 자고 이동할 수 있는 수단으로 택한 것이었는데
한국에선 가장 좋은 자동차에 가장 좋은 장비와 장치 그리고 일반적인 집과 다름 없는 완벽한 시설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듯 했다.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테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본다. 누군가에게는 화려하고 비싼 밴이 밴라이프의 목표일 수도 있으니.
우리가 밴을 개조하던 2019년 봄.
같이 일하고 있었던 런던의 한인 민박집을 때려치우고 런던 외곽의 어느 주차장에서 밴을 계속 캠핑카로 개조하고 있을 때, 그곳에는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없었다. 그저 침대 하나 달랑 놓인 고물 밴과 화장실만 있는 공동 사무실 건물만 있었을 뿐.
밴은 언제 완성될지 기약을 할 수 없었고 하루하루 미뤄지는 출발 날짜에 우리는 서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밥 조차도 제대로 먹을 수 없어 근처 마트에서 매일 똑같은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밴을 개조하고 있던 그때에 혜아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런던 외곽의 구립 체육관에서 몰래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도 오히려 샤워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워 했다. 나중에는 나 없이도 혼자 총총총 걸어가서 샤워를 하고 왔다.
물론 나중에는 체육관 직원에게 발각되서 돌아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혜아는 마냥 신이 나 있었다. 구립 체육관은 가까운 곳에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련하게 웃음만 나온다.
어떻게 그렇게 버틸 수 있었을까. 어떻게 우린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린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다시는 그런 사소함에 감사할 수 없고 다시는 그런 어려움을 해쳐나갈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날 너무 슬프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