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딱 한 명의 진짜 친구가 있다. (물론 몇 명이 더 있긴 하지만 일단 극적인 상황을 더하기 위해 한 명이라고 하자.)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에서 전학을 온 그 친구는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엔 우수한 성적으로 특별고를 가는 바람에 몇 년 동안 잊고 지내다가 대학교에서 우연히 동창들을 만나게 해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시 만난 뒤 스무 살 때 부터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한 그 친구는 내가 유학을 갈 때 즈음 결혼을 했고 졸업 학년이 되었을 때엔 딸을 낳았다.
서론이 길었는데 어쨋든 우린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로 지금까지 만나면 술을 마시며 온갖 얘기들을 나눈다. 아주 오랫동안 많은 얘기를 쏟아 내기 때문에 술도 엄청 마시지만 나중엔 술에 취해 얘기를 하느라 다음에 만나서 똑같은 얘기를 해도 전혀 새로운 얘기를 나누는 듯 언제나 지루하지 않다.
대화의 주제는 여러가지였지만 그 친구가 주로 하던 얘기는 회사생활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고달프고. 그 친구가 하고 싶어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회사를 다니고 있던 친구는 쇠골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얼굴에 달고 술 자리에 앉아 푸념을 늘어놓았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난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떄려쳐”
결혼 전이었던 그 친구는 때려치라는 말에 순간 혹 한듯 표정이 밝아지는 듯 보였지만 이내 이런저런 현실 상황들을 이야기하며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그렇게 말해줘서 대리만족이 된다고 했다. 대리만족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난 진심으로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제든 회사를 때려치우면 나랑 같이 재미있는 일들을 해보자고 했다. 이런 대화는 매번 함께 술을 마실 때 마다 이어졌다.
며칠 전 그 친구와 또 술을 마셨다. 코로나 때문에 10시 까지 밖에 식당에 있을 수가 없으니 보통 밤늦도록 술과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모든걸 조금 서둘러야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처럼 친구와의 술자리는 재미있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난 술에 취해 기억을 못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10년 전 너가 회사 일이 힘들다고 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때려치라고 말해서 미안하다고. 내가 지금 그런 상황에 있어보니 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고 내가 했던 그 한 마디가 철 없는 놈이 뇌를 거치지 않고 한 것인지 알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지금 그런 상황에 있어보니 나에게 누군가 그렇게 말을 한다면 난 기분이 좋지 않을거라고 했다.
‘때려쳐’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얼마나 철없는 말이었는지 이해가 된다.
또 한편으론 그 말이 철없는 말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불쌍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