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의 말에 따르면 그 두 까만 강아지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태어난 자매였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태어난지 삼 개월 정도된거 같다는 둘은 그동안 꼭 붙어다녔다는데도 성격이 완전히 달라보였다. 무릎 위에 매달려있던 아이는 엄청 활발했다. 내 몸에 달라붙어 있던 다른 강아지들에게 저리 가라고 소리를 치거나 쫓아내려는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반대로 내 발등 위에 누워 있던 아이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했다. 주위의 다른 개들에게도 큰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사실 검은색을 좋아하는 혜아는 유기견 보호소에 가기 전부터 검은색 개를 입양하자고 노래를 부르고 있던 터라 난 이 두 아이를 보자마자 이미 입양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하지만 태어날 때 부터 쭈욱 둘이었다는 루크의 말이 신경쓰였다. 둘 다 입양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건 정말 자신이 없었고 하나만 입양하자니 둘을 생이별 시키는 것 같은 죄책감이 벌써부터 들었다. 차라리 다른 강아지를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까부터 내 발등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검은 강아지 자매 중 하나가 계속 눈에 밟혔다.
활발하고 시끄러운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발등에 있던 검은 강아지는 아주 조용히 엎드려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는 녀석을 안아올려서 보니 까만 얼굴에 노란 눈썹이 너무나 귀여웠고 흙바닥에서 지내서 인지 흙이 말라 붙은 코가 측은해보였다. 그러고보니 언니인지 동생인지 모를 다른 아이도 노란 눈썹을 갖고 있었다.
얘네는 계속 같이 자라 온 자매인데 하나만 데려가면 가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루크는 괜찮을거라며 웃으며 답했다. 전혀 괜찮을거 같지 않았지만 그렇게 믿기로 하고 두 자매 중에 눈썹이 조금 더 진한 노란색이고 눈이 더 예쁜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했다. 루크가 지금 바로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도록 근처 동물병원에서 기본적인 예방접종과 강아지 여권 발급이 되는지 알아보겠다며 보호소 안쪽으로 사라지고 우린 차에서 기다리기 위해 아까 들어왔던 철조망 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내 발등에 얌전히 엎드려 있던 까만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와 적당한 거기를 두고 따라오기 시작했다. 귀여움과 놀라움에 혜아가 꺅꺅 소리를 지르고 있는 와중에 루크가 지금 바로 동물병원으로 가면 오늘 당장 입양할 수 있다며 당장 출발하자고 했다.
동물병원은 유기견 보호소가 있는 스르지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강아지의 몸무게를 재고 예방접종 주사를 맞힌 뒤 입양에 필요한 절차를 시작했다. 입양을 위해서 나에게 없는 몇 가지 서류가 필요했지만 동물병원 의사는 나중에 스플리트로 돌아가서 서류를 갖춘 뒤 마저 진행할 수 있도록 임시조치를 취해주었고 강아지의 여권 발급을 위해 마지막으로 강아지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새벽부터 유기견 보호소로 가는 밴 안에서 우린 강아지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진지하게 의논을 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였다. 한글로 지을지 영어로 지을지도 결정을 하지 못했는데 수의사는 영업시간이 끝났고 자기는 집에 가고 싶으니 빨리 이름을 정하라고 재촉을 했다. 혜아는 역시나 조금 전 유기견 보호소에서와 똑같은 ‘난 도저히 결정할 수 없으니 오빠가 알아서 해’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결국 난 체중계 위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는 생후 삼 개월 된 노란 눈썹의 까만 강아지 이름을 ‘사랑’으로 지었다. ‘사랑’은 혜아의 태명이었는데 혜아의 말로는 아직도 가족을 비롯한 친인척들이 혜아를 ‘사랑’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혜아의 태명 그대로 따서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크로아티아 수의사에게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강아지 여권에 Sarah 라고 쓴걸 몇 번을 고쳐 Sarang이라고 적어주었고 그날 사랑이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샴푸와 사료 등 필요한 몇 가지 물품을 더 산 뒤에 사랑이의 여권을 받아들고 동물병원에서 스플리트의 숙소로 다시 출발했다. 그날 저녁 민박집에 단체 손님의 체크인이 있었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사랑이는 조용했다. 딱히 움직이지도 않았고 밖을 두리번 거리거나 우릴 쳐다보는 일도 없었다. 나와 혜아 사이에 사랑이를 앉혀두었는데 엎드려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앉아 있는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눈을 제대로 뜨지도 않고 억지로 이 상황을 외면하려는 듯 쪼그리고 스플리트로 돌아오는 4시간을 가만히 있었다.
때문에 오는 내내 내 머릿 속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얘가 어디 아픈건 아닌지, 혹시나 무슨 지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건지 걱정이 됐다. 심지어 다른 아이를 데리고 왔어야 했던건 아니었지 후회가 들기도 했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꼼짝도 안하던 사랑이는 민박집에 도착해서도 차에서 내리려고 하질 않았다. 겁을 먹은건지 우리가 싫은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단체손님 체크인을 위해 혜아가 민박집으로 들어간 뒤에도 난 한참을 사랑이의 목줄을 잡아 당기며 차에서 내리게 하려고 했지만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14킬로그램에 가까운 사랑이를 들쳐앉고 민박집으로 들어가야만했다.
민박집에 도착해 방으로 들어온 사랑이는 그제서야 바닥에서 뒹굴기도 하고 밥을 달라고 조르기도 하면서 다른 강아지들과 다름없이 행동했지만 이번엔 며칠 동안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잠을 잤다. 어디가 아파서 그런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게다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오기 직전 목 뒤에 발라준 약 때문인지 사랑이 털 속의 좁쌀만한 벌레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며칠을 손톱으로 방바닥을 뛰어다니는 벌레를 잡아죽이고 나서 어느 정도 털에서 벌레가 없어졌다 싶을 때 즈음 사랑이를 씻겨주고 민박집 근처의 애견숍에서 사온 벌레 퇴치제 스프레이를 뿌려주고 나니 여느 집 강아지들과 다름없어 보이는 깔끔한 아이의 모습이 되었다.
사랑이가 우리에게 적응을 했을 때 즈음엔 어느덧 11월 중순이 되었고 무서워서 방 문턱도 못 넘어오던 사랑이는 어느 덧 민박집 밖을 뛰어다녔으며 막 우리가 입양할 때 부터 너무나 조용해서 아픈줄 알았던 사랑이는 원래 성격이 조용한 아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밴을 수리하기로 했다. 이탈리아에서 무너져 내린 청수통 틀을 다시 만들어야 했고 슬로베니아에서 의심했던 앞바퀴 충격 흡수장치의 고장을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도 스플리트는 꽤나 큰 도시이고 수도인 자그레브 보다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곳이라 인프라 구축이 잘되어 있어서 수리를 하는게 어렵지 않았다. 큰 DIY 숍에서 튼튼한 나무를 구해 청수통 구조물을 다시 만들어 튼튼하게 받칠 수 있게 보강했고 민박직 근처에서 찾아낸 영어가 가능한 수리공은 충격흡수장치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모든 수리가 다 끝나고 나니 어느 덧 우리가 떠나기로 계획했던 11월 말이 다 되어 있었다. 밴은 내부 정리부터 수리까지 완벽하게 끝냈고 사랑이도 며칠의 적응훈련을 마치고 밴에 제법 익숙해진 듯 했다. 이제는 정말 출발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민박집에서 일하는 동안 혜아는 스플리트의 국립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동갑내기 한국인 발레리나 친구를 만나 어느덧 절친이 되었고 민박집을 떠나기로 한 날 발레리나 친구는 민박집까지 와서 마지막 저녁도 먹고 수다도 떨며 다같이 밴 앞에서 한껏 폼을 잡고 사진을 찍은 뒤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단 한 달만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된 혜아는 차에 올라타면서 부터 서로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에 발레단 휴가를 이용해 체코에서 만나기로 했으면서 혜아와 발레리나 친구는 다시는 못 볼 사람들 처럼 슬피 울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고조 되었을 때 떠나야 멋있지 않겠는가. 난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운전석에 올라 키를 꽂고 돌렸다.
하지만 차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