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부터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미국에서 크로아티아로 강아지를 보내는게 그렇게 쉬울까 싶었는데 역시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급하게 재촉하는 그 주인의 태도가 무언가 깨름칙했다. 강아지를 어떻게 항공운송을 하는지 나도 정확히 아는게 없었지만 운송을 하기 위해서 운송회사까지 갔으면서 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강아지가 비행기에 실리기 직전에서야 통관에 필요한 금액을 보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정확하게 무슨 이유로 300달러라는 돈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자기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무료로 입양을 하는건데 300불은 운송비라 생각하고 보내줄까 하는 결론에 가까워졌고 마지막으로 혹시 모르니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 검색을 해본 뒤에 송금을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나 실망스럽게도 똑같은 사례를 인터넷에서 찾는건 그리 어렵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어떠한 사람이 우리와 비슷하게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의 개를 무료로 입양하기로 했는데 통관을 이유로 소액의 돈을 요구해 보냈더니 이후에 계속 다른 이유로 점점 많은 금액을 필요로 해서 다 보냈지만 결국 개는 오지 않았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을 보고 의심이 많이 커진 상태였지만 정말 마지막으로 직접 확인을 해보기로 하고 주인에게 돈을 보내기 전에 확실히 하고 싶으니 혹시나 강아지를 보내기 전에 찍어둔 영상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동영상을 하나 보냈다.
동영상에는 공항의 짐을 부치는 곳에서 운송용 케이지에 들어가 있는 허스키가 보였고 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사람이 화면 앞으로 손을 뻗어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영락없이 주인이 강아지를 배웅하고 있는 모습이었으니 빨리 돈을 송금하지 않으면 저 불쌍한 강아지가 공항 창고에 처박혀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강아지가 어딘지 모르게 달라보였다. 게다가 분명히 전날 보내준 사진도 당일날 찍은거라고 했었는데 그 사진보다 좀 더 커보였다. 그러고보니 영상의 배경이 공항인 것도 이상했다.
운송업체에 가서 강아지를 맡긴다고 했는데 왜 공항의 보딩 데스크에서 찍은 영상을 보내준단 말인가. 전문업체에서 제대로 된 규격과 절차에 맞춰서 강아지를 운송하는게 아니라 그냥 어디 놀러가기 위해 짐으로 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고보니 보내준 영상에 목소리가 살짝 들리는거 같아 영상을 컴퓨터로 옮겨 소리를 키워보니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이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안녕 아가야, 우리 한 시간 뒤에 다시 만나”
모르긴 몰라도 미국에서 크로아티아까지 비행기로 1시간 만에 간다는건 불가능하다는게 확실했다. 그런데 저렇게 물이나 음식도 놓여있지 않은 케이지에 강아지를 넣어두고 한 시간 뒤에 만나자고 하다니. 게다가 나와 연락을 주고받던 주인은 자신을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아들의 아빠라고 소개를 했는데 영상 속의 목소리는 흑인 아줌마인 듯 했다. 이 사람이 우리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는게 확실해지자 순간 짜증이 확 밀려왔다. 이틀 동안 놀아났다는 사실에 대한 짜증이기도 했지만 사기꾼 놈 때문에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던 혜아가 실망하는 모습을 봐야만 한다는 거였다. 때마침 그 사기꾼에게서 돈을 안보내냐는 독촉 문자가 다시 오자마자 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모욕적인 말에다가 기분 나쁜 욕을 섞어서 그렇게 사니까 기분 좋냐고 비아냥 거리는 답장을 보냈다.
나의 답을 받고 사기꾼과의 연락은 그렇게 끊겼고 난 사기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허탈해졌다. 이대로 가만히 넘어가려니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고 이름을 뭘로 할지, 옷은 어떤걸로 입힐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던 혜아가 실망한걸 보고 있자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며칠 동안 미친 듯이 인터넷을 뒤졌다. 검색 사이트부터 SNS 까지 영어와 크로아티아어를 마구 섞어가며 크로아티아에서 강아지를 입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미친듯이 찾았다.
얼마 뒤 스플리트에서 남쪽으로 약 4시간 정도 떨어진 유명한 성벽이 있는 도시인 두브로브니크에 유기견 보호소가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어떤 아줌마가 몇 년 전 부터 길에 버려진 강아지 몇 마리를 산 위의 빈 터에서 보호하기 시작하다가 현재는 400마리에 가까운 유기견들을 데리고 있으며 두브로브니크 시청에서 불법 점거로 철거를 하려고 하자 이를 보호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그곳을 정식 유기견 보호소로 지정 받을 수 있게 후원과 자원봉사 등을 하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 유기견 보호소는 직접 사료를 사들고 가서 기증하거나 하룻 동안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으며 유기견들이 좋은 집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입양도 도와주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강아지를 입양할 수 있는 곳을 찾았으니 우린 며칠만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정말 반려견을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곧 다가오는 혜아의 생일에 맞춰 두브로브니크로 직접 가서 입양을 하기로 했다.
11월 3일은 혜아의 생일이였고 게다가 우리가 만나고 처음 맞는 생일이였다. 때문에 난 정말 제대로 혜아가 생일을 보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여전히 돈이 많은건 아니어서 비싼 선물을 사줄 순 없었지만 좋은 레스토랑에서 우리가 거의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풀코스 요리를 먹기로 했다. 민박집에서 일하며 손님들에게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맛있는 레스토랑이라고 소개해준 곳을 예약하고 갔다. 밴라이프를 하며 단 한번도 즐겨본 적이 없는 레스토랑 외식을 하고 있자니 사치를 부리는 것 같았고 돈 많은 부자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레스토랑의 조명도 적당하고 음악도 잔잔하며 웨이터들도 상당히 친절했다. 손으로 쓴 편지를 전해주며 우린 와인과 함께 스타터 요리부터 제대로 시작을 했다. 바닷가 도시답게 해물이 주재료인 요리들은 상당히 신선하고 맛이 좋았는데 정확하게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혜아의 스타터는 오징어 순대와 비슷한 요리였다.
완벽한 생일 저녁식사였지만 혜아는 스타터를 다 먹지도 못하고 갑자기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더니 결국 메인 요리는 거의 손도 못대고 디저트는 커녕 와인도 다 남긴채 결국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첫 생일파티였고 기대를 많이 한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여서 너무 아쉬워도 속이 안좋다니 너무 걱정이 됐었는데 숙소로 돌아온 혜아는 언제 그랬냐는듯 멀쩡해져버렸다. 혜아의 생일 다음 날 우리는 강아지를 입양하러 두브로브니크로 가기로 했던 터라 금방 괜찮아져서 다행이었지만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도 혜아는 좋은 식당에서 분위기 잡고 저녁을 먹을라치면 속이 울렁거리거나 몸이 안좋아져버려서 먹는 둥 마는 둥 레스토랑을 나왔고 집에 오면 다시 멀쩡해져서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신나게 먹어치웠다. 집밥이 제일 좋다는 아빠의 말을 듣고 있는 엄마의 기분을 혜아는 알까 싶다.
어찌되었든, 비수기의 크로아티아는 여행객이 전혀 없었다. 거리는 텅텅 비어 있었고 민박집도 11월이 다되었을 때 즈음엔 며칠 동안 투숙객이 전혀 없을 때도 있었다. 혜아의 생일 다음 날도 민박집에는 그날 저녁에 체크인 할 단체 손님을 제외하고는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우린 계획한대로 아침 일찍 밴을 타고 민박집을 출발해 정오가 다 되었을 때 즈음 두브로브니크의 스르지산 위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에 도착했다.
보호소의 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해보였다. 판자와 철제 담장들로 대충 둘러져 있는 보호소 안에는 얼핏 봐도 엄청난 수의 유기견들이 살고 있었다. 도착해서 몇 명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를 보고 개들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신나게 짖어대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크로아티아어 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워 정신이 빠져나갈 때 즈음 루크라는 친구가 나타나 영어로 안내를 해주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소형견이 지내는 곳을 지나 몇 개의 허름한 철조망 문을 통과하니 중대형 유기견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보호소에 오기 며칠 전 중대형견을 키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들어서자마자 그 곳에 있는 모든 개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한 두마리가 핥기 시작해서 받아주다보니 전부 다 내 위로 뛰어 올랐고 바닥에 주저 앉을 때 까지 멈추질 않았다. 조금 지나자 나이가 좀 있는 개들은 관심이 떨어졌는지 자신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어린 강아지들만 남아 있었다.
어린 강아지들은 내가 왜 왔는지 알고 있는거 같았다. 제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교를 부리듯 쪼그려 앉아 있는 내 몸 이곳저곳에 달라붙어 부비적 거리거나 발등에 드러눕고 무릎에 턱을 올리고 있었다. 옆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혜아에게 어떤 강아지를 데려갈까 물었지만 이미 혜아는 절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루크와 같이 내 몸 이곳저곳에 달라붙어 있는 강아지들의 사연들을 하나하나 들으며 어떤 아이가 좋을까 의논을 하고 있는데 보호소 안쪽에서 똑같이 생긴 까만 강아지 둘이 뒤늦게 총총총 오더니 하나는 활기차게 내 무릎 위에 매달렸고 다른 하나는 무심한 듯 내 발등 위에 살포시 누웠다.
우린 그렇게 사랑이를 만났다.
그럼 사랑이는 자매나 남매였나요? 똑같이 생긴 두아이라고 하셨는데
사랑이는 자매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