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아와 내가 민박집 스태프 일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직업과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여행을 나오게 된 이야기를 민박집 식탁 앞에 맥주를 들고 앉아 듣는건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일과였다. 영국의 민박집에서 일할 땐 밤마다 맥주가 모자를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투숙객들과 함께 여행담 부터 시작해서 인생 얘기까지 끝도없이 수다를 떨었고 사람들이 민박집에 머무는 동안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것 처럼 정이 들어 헤어지기 아쉬워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쉬움에 기분이 우울해질 틈도 없이 새로운 손님들이 또 들어왔고 그렇게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 밤을 보냈다. 크로아티아의 민박집에서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될지 기대가 됐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는 영국만큼 여행객들이 쏟아져 오지는 않았다. 다른 유럽들과 거리가 멀어서인지 배낭여행으로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휴가를 내고 온 직장인이나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들이었다. 때문에 다들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어서 저녁에 오손도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스플리트 관광을 마치고 온 뒤 씻고 각자의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퇴실을 해버리니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친해질 틈도 없었다.
이런 손님들만 왔다면 아마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재미없어서 도망을 갔겠지만 다행히도 3개월을 꽉 채워서 크로아티아에서 지낼 수 있었던건 바로 간호사들과 군인들 덕분이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간호사로 일을 했거나 군인으로 일을 했었던 여행객들이었는데 간호사들은 일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몇 년차 이상 일을 하며 경력을 쌓으면 대부분 그만둔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에 인력이 부족해서 재취업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놀 때 조금은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다고 한다. 너무나 힘들게 그래서 민박집에서 만난 간호사들은 돈의 부족함이나 시간에 촉박함 없이 여유롭게 여행을 했고 병원에서 격무에 시달리며 아침저녁으로 일만 해서인지 놀 때는 정말 즐기면서 노는 것 같았다. 제대한 직업군인들도 직업의 특성상 해외에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테니 최선을 다해 여행하고 즐기며 놀기 위해 완벽히 준비가 된것 같았다.
덕분에 우리는 전혀 몰랐던 간호사와 직업군인의 세계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크로아티아 민박집에서 지내는 동안 간호사였는지 군인이였는지 맞출 수 있는지 그 손님의 분위기만 보고도 맞출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간호사였던 손님들의 첫인상은 어딘가 모르게 지쳐보였고 세상을 달관한 듯한 모습이였으며, 전직 군인이었던 사람들은 건강해 보였고 항상 자신감에 차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쨋든 여행객들은 계속 민박집을 찾았고 혼자서 일할 수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추석 연휴 즈음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투숙객이 몰렸다. 주로 대학생이나 회사 초년생이 여행객이었던 영국과는 달리 크로아티아는 대부분이 30대 중후반에서 50대 까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여행객이 대부분이었고 추석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까지 몰려들면서 정말 바빠졌다. 이때부터 혜아는 민박집 일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도 밥 하랴 청소 하랴 하루종일 바빴지만 모든게 처음 경험하는 일이였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행객들과 얘기도 통하니 힘든줄도 모르고 일을 했지만 크로아티아는 정반대였으니 일이 재미 있을리가 없었다. 모든 민박집이 그러하듯 아침밥을 차려줘야 하기 때문에 요리를 전혀 못하는 혜아를 대신해 내가 아침을 만들었고 혼자 일하기로 해놓고 내가 아침을 만들고 있는 사실 때문에 혜아는 더 신경이 쓰여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이 문제로 옥신각신 하다가 대판 싸우게 되었고 다음 날 혜아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짐가방을 다 싸고 나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이 민박집에서 돈을 버는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이 돈 때문에 이렇게 힘들다면 반드시 힘든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하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를 위해서 그만두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민박집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연락을 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리는 애초에 둘이었고 지금도 둘이며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힘들게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같이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급여는 그대로 혜아가 일한 것만 주면 되지만 둘이서 일하는게 싫다면 우린 그만둘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행히도 둘이 같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추석 연휴가 지난 뒤 손님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루에 많아야 세 네명 정도의 여행객들이 왔으며 나중에는 아예 없을 때도 있어서 혜아의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도 없어지면서 지루해진 우리는 다시 밴으로 돌아갈 생각만 했다.
밴라이프를 하면서 우리는 종종 개를 데리고 캠핑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혜아와 난 작은 강아지를 키운 경험이 있어서인지 개와 함께 여행을 하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같이 상상을 했고 그런 사람들을 볼 때 마다 둘 다 부러워 했지만 당장 우리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또 다른 생명체를 책임질 수 있겠냐며 서로를 말렸다. 뿐만 아니라 개를 가게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한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유럽은 개를 사는 것이 아니라 입양을 해야 한다. 집도 없이 떠도는 우리는 입양 절차를 시작도 하기 전에 불합격이었기 때문에 더더욱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민박집 생활이 이제 한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던 어느 날 혜아가 문득 강아지 얘기를 다시 꺼냈다. 민박집에서 일하면서 이제 돈도 모았으니 개 한마리 정도 책임질 수 있지 않겠냐고 며칠 동안 나의 눈치를 보며 물어보았지만 이미 난 어떻게 하면 개를 입양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었다. 밴라이프를 하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혜아가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는거였다. 그런데 혜아가 개와 함께 밴라이프를 하면 좋을거 같다고 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크레이그리스트(Craiglist) 였다. 소위 말해 우리나라의 ‘중고나라’ 같은 웹사이트인데 전세계에 있는 사람과 사람이 간단한 물건 판매부터 서비스까지 이곳에 광고를 올리고 필요한 사람이 광고를 보고 연락을 해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이용 할 수 있는 사이트이다. 사용하는 방법이 아주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크로아티아에서 어떻게 개를 입양할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은 이곳을 통해 분양을 하려는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크레이그리스트를 검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시베리안 허스키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으니 분양을 하겠다는 크로아티아 사람의 광고를 찾을 수 있었다. 안그래도 오래 전부터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우고 싶었던 난 아주 작은 시베리안 허스키 사진을 보자마자 글을 올린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광고를 올린 주인은 꽤나 금방 답장을 했다.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자신의 아들이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고 아들을 간호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간호하느라 바빠서 같이 데려온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우기가 힘드니 분양을 하겠다는 거였다. 비용도 받지 않을거고 자기가 알아서 미국에서 크로아티아로 보내주겠다고까지 했다. 얼마나 강아지를 아끼면 이렇게 아무런 돈도 받지 않고 그 멀리서 기꺼이 당장 분양을 보내려고 할까 측은하면서도 고마웠다.
물론 크레이그리스트 사이트는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은걸로 유명했다. 핸드폰을 사기로 했는데 벽돌이 오는건 기본이고 불법 성매매 광고들도 거리낌 없이 올라오는 곳이었기에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웠지만 돈을 요구하지도 않고 아픈 자식을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분양을 한다는 사실에 입양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메신져 아이디를 교환했다. 하지만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서 손해 볼거 없으니 지금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메신저로 보내달라고 했고 역시나 상당히 빨리 사진이 두 장이 전송되었다. 아까 본 그 아이가 맞았다. 크레이그리스트에서 본 것보다 조금 더 큰 듯 했으나 아기 강아지들은 당연히 하루가 다르게 자라겠지 싶었다. 주인은 내일 당장 강아지를 운송업체에 데리고 보내주겠다고 했다.
미국시간으로 아침이 되자 주인에게서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락이 왔다. 집을 나서고 차를 타고 운송업체에 도착해서 잘 키워달라는 말과 함께 강아지를 보냈다는 연락까지 받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혜아와 강아지까지 밴라이프를 다시 시작하게 될걸 생각하니 왠지 흥분이 됐다. 책임감이 생기는거 같았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며 좋아할 혜아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듯 했다.
우리는 벌써부터 개와 함께 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추운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이제 곳 겨울이니 딱 좋은 시기인거 같고 여름이 되면 추운 북쪽으로 올라가면 된다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어떤 옷이 어울릴지 어떤 사료를 줘야할지 벌써부터 쇼핑목록을 만들고 있었으며 집 근처에 가장 좋은 동물병원이 어디인지 검색을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주인에게서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운송업체에서 연락이 와 운송 절차를 거치다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집으로 돌아왔고 곧 강아지가 비행기 화물칸에 올라야 하는데 통관을 위해 돈 300불을 보내야 한다며 다급하게 연락을 해왔다.
마지막… 쌔하네요ㅠㅠ 300불 뭐징ㅋㅋㅋ
항상 이렇게 시작하나봐요…
어허~~ 개를 그렇게 아끼는 사람이 었으면 잘 키워줄 사람을 만난게 고마워서 그런 전화를 하지 않을텐데…
그러니까요….이상했어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