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명한 여행지와 잘 맞지 않는다. 이거 하나는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밴을 놓고 관광지를 여행 할라치면 혜아는 어딘가 아팠고 무언가 관람하러 가기로 하면 꼭 전날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이유로 싸웠다. 그래서 우린 제대로 여행을 하지 못한 적이 많았고 관람을 하지 못한 박물관들이 제법 있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한 검소한 여행이라고 애써 포장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저녁 늦게 도착한 우리는 넓은 비포장 공터 주차장에서 하루를 보낸 뒤 다음 날 조그마한 도심을 둘러보기 위해 한참을 공들여 단장을 하고 밴을 나섰다. 날은 그리 덥지 않았지만 주차장에서 류블랴나 도심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고 가는 동안 혜아의 컨디션은 조금씩 안좋아지더니 거의 다 도착했을 때에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기 힘들 정도로 아파해서 바로 밴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도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자고 일어난 뒤에 혜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몸상태가 한결 좋아졌지만 하루는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유료 주차장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아담한 류블랴나 시내를 여유롭게 걸으며 둘러본 뒤 우린 미련없이 그곳을 떠났다. 이제는 쉥갠 국가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이틀 밖에 안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는 꽤나 작은 나라여서인지 크로아티아 국경까지는 30분 정도 만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우린 쉥갠 체류 기간인 90일을 꽉 채우고 떠나고 싶어서 국경 근처의 자연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며칠 후면 크로아티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될테니 밴라이프도 잠시 멈추게 되고 이런 자유로움도 즐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슬로베니아의 마지막 정박지는 이름모를 숲 속을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자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 어딘가였다. 이제 크로아티아가 코앞에 있고 곧 이 지긋지긋한 돈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지만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지내고 있자니 이 밴라이프를 멈춰야 한다는 생각에 서운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살기 위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아이러니에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동안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현실’이었고 스트레스의 근원이었다. 혜아는 프랑스를 벗어나던 때 부터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겠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었다. 6개월 정도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서 다시 나올테니 그동안 혼자서 밴라이프를 하고 있으라고 했고 난 장거리 연애는 절대 하고 싶지 않으니 3개월만 참아주겠다며 매일 티격태격했었다. 더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나왔어야 했다며 자책과 비난을 번갈아가며 했었다. 결국 우리의 고민과 고뇌는 돌고돌아 제자리로 왔다. 밴라이프를 잠시 멈추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그동안 프랑스에서 부터 슬로베니아까지 우린 국경 검문없이 편하게 돌아다녔다. 영국 번호판을 단 차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쉥갠 조약국들은 따로 검문소를 운영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EU에 가입을 한지 얼마 안된 크로아티아는 쉥갠 조약국이 아직은 아니었기에 정식 출입국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밴라이프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정식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야하는 우리는 살짝 긴장이 되었고 검문소에 도착하자 왠일인지 경찰이 검문소에 앉아 있었다. 경찰은 우리의 여권부터 시작해서 자동차 등록증과 보험서류 등 온갖 증명서들을 요구했고 밴 내부와 침대 서랍까지 다 열어보라고 ‘명령’했다. 분위기는 꽤나 고압적이어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불법적인 물건을 밀수하려는 사람 마냥 위축이 된 채 고분고분 경찰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 한바탕 밴을 뒤집어 엎고 나서야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는 출입국 관련 업무를 비롯해 비자 발급 업무 등 일반적으로 외교부에서 하는 일을 경찰이 모두 맡고 있다. 게다가 크로아티아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숙소를 잡고 여행을 한 뒤 출국할 때 까지 자신의 위치가 고스란히 경찰에 기록이 된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시절의 시스템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 했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이후에 이래저래 고생을 많이 했다.
무사히 검문소를 통과했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해 너무나 배가 고팠던 우리는 간단하게 배를 채우기 위해서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리예카(Rijeka)라는 도시로 향했다. 곧 민박집에서 일을 하게 될테니 굳이 장을 보지 않고 패스트푸드로 때우기로 하고 맥도날드를 찾아 시내로 들어갔다. 보통 수도권이 아닌 이상 지방 도심은 주차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왠일인지 리예카에서는 공짜로 주차할 수 있는 곳을 단 한군데도 찾지 못했다. 자그마한 도심 속의 좁다란 도로를 몇 바퀴 돌고 나서야 공짜 주차를 포기하고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주차장 주변 곳곳에 세워진 주차 요금기에서 원하는 주차 시간 만큼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차의 앞유리에 잘 보이도록 놓아두어야만 했는데 주차 요금기는 오로지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했고 크로아티아의 통화인 ‘쿠나’ 동전만 넣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카드 결제나 그 흔한 앱 결제도 불가능했다. 마치 제 3세계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에 대한 아무런 정보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밴을 불법주차 해둔채 햄버거를 먹으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린 결국 리예카를 떠나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고속도록의 휴게소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오랜만에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배부르게 햄버거를 먹고나니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 같았다. 이제 쉥갠 기간에 쫓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스플리트에 도착해 민박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밴에 물 채울 걱정이나 화장실을 비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파리에서 브레이크를 수리하기 위해 차를 놓고 나왔을 때 보다 왠지 모르게 더 신이 났다. 이제 크로아티아의 남쪽에 있는 스플리트까지 여유롭게 밴라이프를 즐기며 일주일 안에만 내려가면 앞으로 삼 개월 동안 돈을 벌면서 여름도 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여유로움에 대한 기대도 마지막 일주일을 버틸 식량을 차에 채워 놓기로 하고 장을 보기 전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을 하자마자 날아가버렸다.
햄버거를 사먹고 난 우리의 통장에는 9000원이 달랑 남아있었다.
지출 하기전엔 항상 통장잔고를 확인한 다음 해야 한다는걸 배운거네요. 다음 얘기가 궁금해집니다.
이제는 툭하면 잔고확인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