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모기가 싫다
난 모기를 정말 싫어한다.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한다. 모기에 대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모기에 쉽게 물리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혈액형은 O형이고 체온이 높으며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린다. 그리고 실제로 여름에는 모기에 정말 많이 물린다. 긴 옷을 입으면 안물린다고 하지만 난 더위도 많이 타기 때문에 긴팔 긴바지는 꿈도 못꾼다. 한국에서는 항상 몸에 바르는 모기 퇴치제와 물렸을 때 바르는 약을 들고 다녔는데 이 당시에는 물렸을 때 바르는 약만 있었다. 때문에 난 모기에 물리면 광적으로 약을 발라댔고 그런 혜아는 날 이해하지 못했다. 약을 발라 대는 행동 조차 이상하게 보았다.
그런 내 눈 앞에 모기들이 새카맣게 날아다니고 있었으니 거의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모기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던 혜아 조차도 뿌옇게 밴을 채운 모기떼에 기겁을 했다. 우린 먹던 수저를 손에 그대로 쥔 채로 팔다리를 휘저어 가면 모기를 내쫓았다. 너무 많아서 무의미한 짓처럼 느껴졌지만 그것 외에 떠오르는게 없었다. 하필이면 모기향도 다 떨어진 뒤였다.
모기는 무서워서 피한다
한참을 둘이서 좁을 밴 안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면서 손을 휘저어 문 밖으로 밀어내고 손바닥으로 쳐죽인 끝에 뿌옇게 차 있던 모기떼는 어느 정도 사라진듯 했지만 완전히 다 내쫓지는 못했다. 두 마리를 없애면 한 마리가 들어오는거 같았고 밴 내부 구석구석으로 스며 들어 손으로 잡기도 힘든 놈들도 있었다. 우거진 숲과 더럽고 습지 같았던 호수 때문에 주변은 모기의 서식처인 듯 했다. 그래서 우린 신들린 속도로 먹던 테이블을 정리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두운 밤이었고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았지만 이곳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목적지도 방향도 없이 어두운 길을 한참 달리다가 멀리 환하게 가로등을 밝힌 고속도로 입구 톨게이트를 보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톨게이트 앞에 있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니 모기떼에 의해 무너졌던 정신이 좀 돌아오는 듯 했다. 그러고보니 띄엄띄엄 집들이 있고 널찍한 도로가 나있는 나름 깔끔한 환경이어서인지 주변엔 모기가 없는 것 같았다. 실내등을 켜면 모기가 또 날아들어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불을 끈채로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남아있는 모기들을 내쫓았다. 사실 불을 껐으니 모기가 나갔는지 말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허공에 허우적댄 뒤에 조금 더 안전한 장소에서 잠을 자기 위해 다시 출발했다.
우리가 찾은 정박지는 아주 조용한 곳이었다. 작은 마을의 한 켠에 마련된 주차장이었으나 시골 마을이라 주변은 큰 나무와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차도 그리 많이 다니지 않아서 평화로운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우린 평화롭지 않았다. 밤새 밴 어딘가에 남아있던 모기 한 마리에게 엄청나게 물어 뜯긴채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많이 물렸는지 등을 대고 누울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 뒤로 며칠동안 난 더 미친듯이 온 몸에 물파스를 발라댔다. 모기향을 싫어하는 혜아 때문에 난 더 신경질적으로 틈만 나면 모기 퇴치제와 물파스를 사모아서 발라댔다. 밴라이프를 하면서 많은걸 배우고 느끼면서 나를 변화시켜 나갔지만 모기만큼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에서 지내는 일년 동안도 내 바지 주머니에는 항상 모기퇴치제와 물파스가 있었다.
어찌되었든 주차장에서 아침을 맞은 우리는 그제서야 우리가 전날 얼마나 전쟁 같은 밤을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소중한 보물 같은 냉면은 다 먹지도 못한 채 싱크대 안에서 뒹굴고 있었고 삼겹살도 딱딱하게 굳은 채 바닥에 놓여 있었다. 테이블도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지쳐 잠든 흔적이 곳곳에 남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계획에 없던 질주를 해던 탓에 휘발유도 얼마 남아있지 않았고 물도 떨어져가고 있다는걸 밴을 주섬주섬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엉망진창이었다
모기와의 전쟁
이때 즈음 프랑스의 어떤 주유소가 좀 더 싼지 알게 되었고 물을 버리고 받는 일은 더 이상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일들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물을 버리고 받는데 드는 단돈 1유로가 너무 아까웠다. 돈 아낀다고 0.3유로 바게뜨에 버터를 발라 먹는 우리에게 물값은 너무나 부담이 되는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활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물이니 어쩌겠는가.
밴을 정리한 뒤 이를 닦으며 구글맵을 확인해보니 우린 프랑스의 동쪽 어딘가에 와 있었다. 지도도 보지 않고 모기에 정신이 팔려서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조차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거 계속 동쪽으로 가기로 했고 우린 또다시 말 없이 땀을 줄줄 싸면서 아름다운 프랑스의 국도를 달렸다. 너무 더웠지만 너무 아름다웠다. 장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춘 마을의 호수는 마치 영화 CG의 한 장면 처럼 예쁘고 평화로웠으며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은 너무나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호수가 아름다운 그 마을을 둘러보고 나서 혜아는 맥주를 한 박스 사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3~4일은 버틸 수 있는 식량을 채워놓고 또다른 어느 작고 예쁜 마을에서 공짜로 물을 탱크에 가득 받은 뒤 밤 10시가 넘어서 자연 속 어딘가에 정박했다. 모기나 나방이 들어오지 못하게 모기장도 치고 창문 틈들을 모두 막은 뒤에야 창문을 활짝 열어넣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나방과 모기가 사라진 아침에 본 정박지는 더운 여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아 보였다. 밴을 주차한 곳은 널찍한 들판이었고 바로 옆으로는 엄청나게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그 사이는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서 적당한 그림자가 밴 위에 드리워져있었다. 깨끗한 자연 속이어서인지 낮에는 문과 창을 활짝 열어놔도 괜찮을 정도로 모기가 없었다. 천국이었다.
우린 전날 사둔 맥주를 차디 찬 강물에 담궈 놓고 더우면 물놀이를 하고 배고프면 밴으로 돌아와 밥을 먹으면서 또 더우면 찬 맥주를 마시며 파리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드디어 상상했던 진짜 밴라이프가 시작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