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1일.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린 수리에 필요한 500유로를 모아서 정비소로 차를 몰았다. 차로는 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니 조금만 정신 차리고 운전하면 될터였고 반나절 정도만 기다리면 수리가 다 끝나고 다시 파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에어콘이 없는 밴은 몇 분 거리의 짧은 거리를 가는데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더웠지만 이제 곧 밴을 수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참을만 했다.
기분 좋게 밴을 정비소 앞에 세우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지난 번에 만났던 직원은 없고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찍어논 사진을 다시 보여주며 손짓발짓으로 설명을 주고 받은 후에야 내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분 후 나타난 직원은 고개를 저으며 영어인지 불어인지 헷갈리는 말로 영국 차라서 부품이 안맞아 수리를 못한다고 했다. 영국 밴의 슬라이딩 도어는 다른 유럽과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부품이 다르다는건 이해를 하지만 양쪽이 똑같은 브레이크 부품이 안맞는다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어봐도 이 무관심한 프랑스 직원은 ‘농’만 외치면 어색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제는 걱정보다는 짜증이 밀려왔다. 이 정비소 하나만 믿고 2주를 버틴 나의 멍청함에 대한 짜증이기도 했고 이 더위에 다시 밴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보통 이런 상황으로 짜증이 나면 난 이 상황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다. 좋은 모습인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행동을 하기 때문에 문제의 처리는 빠르지만 머릿 속은 그거 하나로 가득차 있어서 시야도 좁아지고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역시나 내 머리는 오늘 안으로 반드시 이 밴을 수리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버렸고 혜아가 무언가 다른 제안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정비소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주변의 모든 시트로엥 정비소를 검색했고 가까운 곳 부터 하나씩 직접 찾아가서 수리가 가능한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미 작동이 잘 되지 않는 브레이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정비소들을 오갔다. 어느 정비소는 문을 닫았고 또 어떤 정비소는 밴을 수리할 만한 공간이 없어서 거절했으며 심지어 한 정비소는 다음 날 부터 한달 간 여름휴가로 문을 닫기 때문에 수리가 어렵다고 해맑게 웃으면서 얘기를 해주었다.
더 이상 이 장난같은 상황을 더 받아드릴 힘도 없고 어이도 없었다. 배고픈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인터넷으로 정비소를 몇 군데 더 찾아야 하기도 하고 햄버거 하나 사먹는다고 밴을 수리할 돈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배를 채우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에서 2주를 보내는 동안 정말 운이 좋겠도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열심히 땡볕 아래에서 컴퓨터를 붙잡고 일한 덕분에 우리에게는 수리비 500유로 외에도 여윳돈이 있었고 5유로 짜리 햄버거를 먹는 죄책감이 덜했다.
햄버거를 철근같이 씹어 먹는 중에도 온통 밴을 수리해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SNS를 통해서 시트로엥 공식 계정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트윗을 날렸고 다행히도 패스트푸트 매장 바로 건너편에 정비소가 있다고 알려줘서 후렌치후라이까지 꼼꼼히 다 먹어치운 뒤 그곳으로 뛰어갔다. 시트로엥 공식 정비소답게 한달짜리 휴가를 가지도 않았고 정비할 공간도 충분해 보였으며 직원들은 영어를 잘했다. 고장난 부위의 사진과 함께 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 어느 부분의 어떠한 부품을 갈아야 하는지 상세하게 적힌 견적서까지 뽑아주었다. 내가 프랑스에 있는지 영국에 와있는지 헷갈릴정도로 친절하고 전문적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할 즈음 견적서의 가격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수리비는 700유로가 넘어가 있었다. 양쪽 앞바퀴는 타이어 빼고 전부 다 갈아야 하는거 같았다. 그리고 부품을 주문하고 받아서 수리하기 까지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 말에 또 한번 간담이 서늘해졌다. 수리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우리가 그동안 지낼 곳을 구해야 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수리하러 곧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혜아가 있는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돌아왔다. 아르바이트까지 한 덕분에 수리할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동안 숙소를 잡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우린 그곳에서 수리하는걸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다.
밴라이프를 하면서 우린 한 순간도 조용히 그리고 편하게 하루를 보낸 적이 없었다. 항상 무슨 일인가 ‘터졌다’. ‘생겼다’가 아니라 ‘터졌다’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매일매일, 작게는 먹다 남긴 음식이 이동 중에 엎어지는 일부터 크게는 도심 한복판에서 배터리가 방전되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일까지 끊임없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문제가 생길 때 마다 걱정을 하면서 해결하기 위해 걱정을 하며 전전긍긍 했지만 나중에는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 걱정보다는 느긋하게 여러가지 해결방안을 늘어놓고 하나하나 될 때까지 시도를 했다. 그리고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었다.
심지어 정말 가지고 있던 모든 방법을 다 썼는데도 해결은 되지않고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도 어떻게해서든지 문제는 뚫고 나가졌다. 우연히 도움을 받거나 또는 운좋게도 저절로 해결된 적도 있다. 때문에 나중에 우리는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모든 문제들은 언젠간 반드시 해결이 될테니 스트레스 받지말자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덕분에 지금까지 밴에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쨋든 이번이 그랬다. 정말 떠오르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고 생각했지만 밴을 수리하는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우연찮게 연락이 된 얼굴도 모르는 우리나라 교민이 자신이 잘 아는 정비소에 연락을 해주었고 다행히도 중국 동포가 운영하는 곳이어서 한국말로 사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정비소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파리를 지나 반대편에 있었다.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게 우리에게 문제가 될리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모를 사고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우린 차량이 많지 않은 새벽에 정비소까지 이동한 뒤 그 앞에서 잠을 자고 문을 열자마자 차를 맡기기로 했다. 그래서 2주를 지냈던 DIY 매장 주차장으로 돌아왔다.이제는 정말로 차를 고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왠지모르게 정든 주차장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섭섭했다. 실제로 우린 차를 고치고 나서도 파리에서 틈만나면 주차장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새벽에 출발한 우리는 구글맵의 안내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정비소 앞에 무사히 도착을 했고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 정비소 입구 바로 앞에서 잠을 청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밴 내부를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선잠을 잤고,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정비소가 문을 열기도 전인 아침에 누군가가 차를 빼달라고 해서 자리를 옮겨 조금 더 잔 뒤 정비소가 문을 열었다는 연락을 받고 마침내 밴을 입고했다.
우린 단 며칠이겠지만 밴을 두고 간다는 사실에 살짝 해방감을 느꼈다.
어디서든 무슨일이든 해결한다^^ 고생담인데 저는 재밌게 보고 있어요^^
저희 고생담을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면 저희는 기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