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사람은 하룻 동안 물을 얼마나 쓸까? 아마 그 누구도 자신이 얼마나 쓰면서 사는지 계산해 본 사람은 없을거다. 물은 어디서든 틀면 바로 콸콸 쏟아지는 것이며 너무도 쉽게 원하는 만큼 쓰고 버릴 수 있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자신에게 하루에 얼마 만큼의 물이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전에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1인당 물 사용량은 변기용과 세탁용을 제외하더라도 하루에 110리터라고 한다. 겨우 70리터 짜리 물탱크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일반인 처럼 물을 쓸 수 없다는 뜻이지만 사실 밴라이프를 준비할 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물탱크가 이베이에서 배달되어 왔을 때 엄청 크다고만 느꼈을 뿐 이 물탱크로 우리가 며칠을 쓸 수 있을지 계산을 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주차장을 막 떠나고 나서부터 우리는 덮어놓고 물을 아끼기 시작했다. 당연히 써야하는 물을 조금만 틀어도 신경이 쓰이고 낭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 수압은 일반 가정과 전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쌨지만 거의 그렇게 틀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피할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물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는 최대한 자제한다. 재료를 많이 씻어야 하거나 물을 많이 넣고 끓여야 하는 음식들은 왠만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하지 말아야 하고 설거지를 할 때에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졸졸졸 흘러나오게 틀어서 씻어야 한다. 매일 샤워를 하는 것은 사치이다. 물론 혜아와 난 게을러서 보통의 집에 있어도 잘 씻지 않아서 전혀 상관없지만, 삼 일에 한 번 정도 비눗물을 씻어 내릴 수 있을 정도만 물을 틀어서 씻는다. 겨울에는 물을 냄비에 끓여서 거기에 찬물을 섞어서 쓴다.
이렇게 아껴써도 물은 5일 정도면 바닥을 보인다.

밴 개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린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를 들어 수도꼭지가 너무 멀리 있는 경우, 문제 없이 물을 받을 수 있게 25미터 짜리 호스를 구입했다. 물을 채우는건 쉬울거라 예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이유로 어려웠다. 물은 공짜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집에서 수도꼭지만 비틀면 나오는게 물이였고 아무리 펑펑 써도 비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흔하던 수도꼭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캠핑장에 가면 넘치는게 물이지만 통장에 25만원 남겨 놓고 하룻 밤에 5~6 만원이나 하는 캠핑장을 물을 받기 위해 갈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종종 어떤 캠핑장들은 2~3 파운드 정도를 내면 물을 받고 버릴 수 있게 해준다.
특히나 영국은 물을 받는 것이 더욱 어려웠다. 다른 유럽의 경우 각 도시 지자체, 또는 주유소나 자동차 정비소 같은 곳에서 캠핑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1~2 유로 정도의 돈을 받고 물을 받고 버릴 수 있는 시설을 많이 설치해 놓았다. 심지어 조금만 더 잘 찾아보면 공짜인 곳도 있어서 어느 정도 밴라이프에 대한 경험이 쌓인 뒤로는 물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였던 영국에서는 스트레스와 고민과 고행의 연속이였다. 25 미터 짜리 호스는 한동안 무용지물이였고 일부러 5리터 짜리 생수를 사 마신 뒤, 빈 물통으로 휴게소나 공중 화장실에서 물을 길어 날랐다. 70리터 짜리 물탱크를 겨우 5리터 짜리 물통으로 한참을 떨어진 화장실에서 물을 떠나 채운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만으로 피곤이 몰려온다.
내공이 쌓인 우리는 5리터 짜리 생수통 몇 개를 더 사 마시고 거기에 물을 채워두는 덕분에 최대 일주일 정도는 버틴다. 하지만 항상 쓴 물과 남은 물의 양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며 기회가 될 때 마다 물을 채워두어야 한다.

물을 채우는 것 만큼이나 버리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밴라이프를 이야기 할 때 자꾸 일반 집과 비교하게 되는데 이것은 정말 우리가 얼마나 무감각하게도 편히 살고 있는지 밴라이프를 통해 깨닫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집에서는 내가 쓰고 버린 물이 어디를 통해서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지 알지 못할 뿐더러, 어디에선가 다 알아서 버려주고 정화해주기 때문에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밴에서의 삶은 180도 다르다. 내가 쓴 물은 그 어디로도 흘러가지 않고 밴의 오수통에 그대로 쌓인다. 밴을 개조하며 장비와 장소의 문제로 오수통을 밖에 달지 못한 우리는 샤워실 오수통과 싱크대 오수통이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안에 그대로 있었다. 뚜껑도 닫지 못한 채. 오수는 아무대나 버릴 수 없다. 반드시 하수구에 버려야 하기 때문에 지정된 물 공급 장소나 공중 화장실에서 비워야만 한다. 물탱크 보다 훨씬 작은 오수통의 크기 때문에 더 물을 아껴 써야했고, 물을 채우는 곳 보다 버릴 수 있는 곳을 더 자주 찾아야만 했다. 오수통이 꽉 차지 않아도 이동 중 밴이 흔들리면 넘쳐 흐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것도 삶이다
우리의 밴라이프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그렇게 여유롭고 낭만적으로 유유자적 하며 살고 싶어요”
사실 우리는 하루 종일 바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청소를 한 뒤 내부를 정리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사진 작업이나 글쓰기 작업 또는 동영상 편집 등의 일을 한다. 해가 떠있을 때 컴퓨터 작업을 해야 밤에 전기를 부족함 없이 쓸 수 있기 때문에 주로 낮에 한다.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또 그날의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로 이동해 장을 본다. 그리고는 정하진 않았지만 어딘가를 향해 이동을 하면서 잠을 잘 곳을 찾고 그 곳에 도착하면 저녁을 해먹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각자 할 일들을 한 뒤에 잠자리에 든다.
보통의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이다. 오히려 삶을 살아가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해야만 하고 더 세세한 것들을 신경 써야만 한다.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게 되고 몰라도 되는 것들을 굳이 알아야 하는 삶이지만 겪어 봄으로써 보통의 삶을 감사하게 되고, 현재 우리의 삶에 뿌듯함을 느낀다.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밴라이프를 꼭 경험해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일단 한번 겪어 본다면 지금 당신의 삶도 충분히 여유롭고 낭만적으로 유유자적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