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지 내가 원할 때 샤워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은 숲 속에서도 해결할 수 있고 밥이야 햄버거만 사먹으면 될 뿐더러 핸드폰을 충전할 곳은 길거리에 차고 넘쳤지만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은 밴 안에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밴을 개조하는 수 개월의 기간 동안 샤워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왕 만드는거 따뜻한 물도 나오고 부엌에서 음식도 편하게 할 수 있게 싱크대에도 물이 나오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수도 시설은 전기 만큼 어렵지 않았다. 물을 저장할 물탱크와 그 물을 압력탱크로 끌어올릴 펌프 그리고 수도꼭지까지 물을 보낼 파이프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리서치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펌프는 물을 사용할 때마다 켰다 껐다를 해야하는지, 그리고 압력탱크는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게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이러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찾기 쉽지 않았고 설치를 하고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물탱크에서 물을 뽑아 올리는건 펌프이다. 저수지에서 물을 퍼낼 때 쓰는 큰 물펌프도 있고 요트나 캠핑카 안에 설치하는 아주 작은 펌프도 있는데 당연히 우리 밴에는 작은 펌프가 들어가 있다. 작지만 가정집에서 나오는 수압과 비교해도 절대 약하지 않다.
펌프가 물을 끌어 올려서 압력탱크에 밀어 넣는다. 압력탱크에는 말 그대로 물이 일정한 압력을 받으며 저장되어진다. 이는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펌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펌프만 있으며 수도꼭지를 틀 때 마다 펌프의 모터가 돌아가는데 중간에 압력탱크를 연결함으로써 압력 탱크에서 먼저 물을 수도꼭지로 밀어내고 일정량의 물이 빠져 나가면 다시 펌프가 압력탱크에 물을 채우기 위해 작동하고 꽉 차면 다시 멈춘다.
그리고 펌프에는 물을 보내는 양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수도꼭지에서 물을 조금만 나오게 한다고 해서 얌전하게 졸졸졸 흘러 나오지 않는다. 펌프가 물을 보내는 힘은 일정해서 적은 양을 보내기 위해 아주 짧은 간격으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물이 꿀렁꿀렁 나온다. 1박 2일로 놀러가는 밴라이프가 아니라면 물을 펑펑 쓰며 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아주 살짝만 틀어서 사용해야 하고 그래서 꿀렁꿀렁 나오지 않도록 펌프가 작동하지 않더라도 수도꼭지로 물을 밀어올려줄 수 있는 압력탱크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밴의 물탱크는 70 리터
사실 수도 시설 작업을 하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과연 하루에 물을 얼마나 쓰는가?’였다.
맨 처음 물탱크를 이베이에서 구입하면서 아주 충분한 크기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먹고 마시고 씻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막연하게만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의 일상에서 하루에 물을 얼마나 쓰는지, 앞으로 밴에서는 얼마나 써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가정용수 기준으로 집에서 소비하는 1인당 물 사용량은 203리터 정도라고 한다. 이 중에 45%정도가 변기와 세탁용이라고 하니 이를 빼면 약 110리터 정도를 하루에 쓰는 것이다. 우리 밴의 물탱크는 70 리터이다. 엄청나게 아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밴라이프를 하면서 물이 부족하다고 서로에게 불평한 적이 없다. 씻을 수 있어서 행복했고 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물론 집에서 펑펑 물을 쓰며 샤워하고 설겆이 했던게 그립기도 했지만 언제든지 필요할 때 밴 안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온다는 것에 감사했다.
풀타임으로 밴라이프를 하기 위해선 없는 것에 적응하고 적은 것에 감사해야만 한다.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이 밴라이프이다. 밴라이프를 낭만적인 삶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