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이 끝나갈 무렵, 캠퍼밴이 완성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소파겸 더블베드가 있었고, 어제든지 요리를 할 수 있는 ‘ㄱ’자 부엌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화장실과 샤워실도 갖춰져 있었다. 우린 백 만원 짜리 밴에 모든 것을 만들어 넣었고 그 기쁨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어딜 가도 우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으며 좀비나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해도 밴 안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린 의기양양하게 밴에 설치한 70리터 짜리 물탱크를 DIY 숍에서 구매한 25미터 짜리 호스로 신문사 사무실 건물의 화장실 세면대 수도꼭지에 연결해 물로 채웠다. 꽉 찬 물탱크과 가스렌지용 가스탱크 덕분에 우리는 모든걸 다 가진 기분이였다. 하지만 이 기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주차장을 떠나 우리가 가장 처음 차를 세우고 잠을 자기로 한 곳은 런던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한 곳의 작은 마을의 야외 주차장이였다. 마침 주말이라 주차장이 공짜여서 ‘얼씨구나’ 싶었지만 오랜 영국 생활의 경험상 그런 주차장은 안전상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린 도시만 바뀌었을 뿐 주차장을 선택했다.
사실 캠퍼밴만 열심히 준비했지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잘 것이며 그런 장소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는 전혀 생각해보거나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는걸 사무실 주차장을 떠나 흥분된 마음으로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몇 시간을 달린 후에 이름 모르는 작은 마을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혜아와 난 밴을 개조하는 동안 대자연을 즐기며 하루를 보내고 일을 하며 잠을 자는 상상을 나누었지만 그래서 그 대자연을 어떻게 찾아 갈 수 있는지는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구글맵 하나만 있으면 될줄 알았다.
유럽의 경우 나라마다 다르지만 영국은 와일드 캠핑이 불법이다. 그렇다고 경찰이 쫓아다니면서 캠핑을 하는 사람을 단속하는건 아니지만 신고 정신이 투철한 영국 국민들은 사유지에서 캠핑을 하려는 듯한 폼만 잡아도 경찰에 신고를 하니 경찰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더 신경 쓰이는 나라다. 이러한 나라에서 혜아와 난 캠퍼밴 이외에는 아무것도 준비 된 것 없이, 물론 경험도 없이 밴라이프를 시작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혜아와 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긍정적인 생각이였다. 사무실 주차장을 벗어나게 된 것에 감사했고, 런던을 벗어나 차를 세우고 잘 수 있는 다른 주차장을 찾은 것에 기뻤으며, 오늘 먹을 저녁 식재료가 있다는 것에 너무나 행복했다. 대자연은 내일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우린 Lake District 라는 국립공원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유네스코에서 World Heritage로 지정이 되었을까 궁금해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Lake District로 올라가는 길에 혜아와 내가 좋아하는 Peak District 국립공원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런던에서 Lake District 까지는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였기 때문에 우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운전했다. 어차피 빨리 가야할 이유도 없으니.
둘째 날 만큼은 우울한 주차장에서 절대 자지 말자고 서로 다짐한 다음 날 차를 세운 곳은 드넓은 들판을 가로 지는 국도 한켠의 간이 쉼터였다. 여전히 주차장 같은 곳이였지만 우리에겐 엄청난 도전이였다. 들판 한복판에 있는 국도여서 완벽하게 노출된 기분이였으며, 말 그래도 정식 주차장이 아니였기 때문에 잠시 정차 했다가 떠나는 차들만 있을 뿐 우리 차 외에는 주차된 차들이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머물기 위해 주차를 했을 때에는 해가 떠 있어서 주위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충분했다. 침대 옆에 있는 문을 열면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차도 그리 많이 지나다니지 않아 평온한 곳이였다. 저녁식사도 차 문을 열어 둔 채 꽃이 피어있는 들판을 보면 즐겼다. 먹었다는 말 보다 즐겼다는 표현이 맞았다.
하지만 해가 지고 맞는 도로 옆 쉼터에서의 밤은 역시나 불안했다. 차 밖에서 들여오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심지어 차 밖으로 빛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철저하게 창문들을 가렸다. 혜아는 밖을 못 보게 한다며 삐죽거렸지만 그런 말 조차 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나의 모든 신경은 차 주변에 쏠려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기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으로 밤을 보낸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주차장만을 찾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캠핑장에는 절대 가지 말자고 서로 다짐을 했으니 지금의 이 상황은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것이였고 두렵고 신경이 곤두섰지만 이 상황에 나를 몰아 넣어야만 익숙해질 수 있을것 같아 꾹 참았다. 혜아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보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중요한 둘째날 밤이였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무식해야만 용감할 수 있다.
혜아와 나의 주변 지인들이 우리의 밴라이프 이야기를 듣고 많은 질문들은 한다.
‘어떻게 시작했는지, 얼마나 모았는지, 어떻게 이런 생활을 알았는지.’
밴라이프 생활이 3개월에 다 되어갈 때 즈음 이와 관련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과연 우리가 밴라이프를 하는데 돈이 얼마가 필요할지, 잠잘 곳은 어떻게 구하며 안전한 곳은 어떻게 찾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고 했다면, 밴라이프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마도 시작하지 못했을거라고 우린 생각했다. 여행하는 중간에도 돈이 없어서 힘들었고 물을 구하지 못해 난감해 했으며 차가 고장나서 몇 주 동안을 꼼짝없이 묶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린 몰랐기 때문에 그 상황들을 나름 용감하게 버티고 해결해 나아갈 수 있었으며 무식했기 때문에 걱정없이 밴라이프를 시작할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낯선 곳에 차를 세우고 잠을 자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동안의 경험 덕분에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지독히도 무식했던 우리의 성격 덕분에 결과에 대한 걱정 보다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기 때문이고, 무식함 덕분에 두려움 보다는 호기심이 더 많았던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시작도 하기 전에 결론을 짓지 않았으며, 질문에 대한 답에 집착하지 않고 그 과정을 즐겼기 때문에 밴라이프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준비가 나쁜건 아니지만 미래는 절대 준비한대로 오지 않는다.
무식해야만 용감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용기도 열정도 시작부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