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기 작업은 큰 문제가 아니였다. 어렸을 때 부터 아빠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덕분이기도 했고, 초등학교 때 부터 꾸준히 라디오 만들기 대회에 출전 했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극과 음극만 알면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에게 전기 작업은 꼬마 전구를 AA 배터리에 연결하는거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캠핑장을 다니며 지낸다면 전기를 연결할 수 있으니 걱정이 없겠지만 여행비용을 최대한 아끼기로 한 우리에게 캠핑장은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전기를 자급자족하는게 가장 중요했다. 이베이에서 12볼트, 200와트 태양열 전지판과 MPPT를 구입했고 115Ah 레저 배터리(또는 딥 사이클 배터리)는 DIY 숍에서 샀다. 태양열 발전에 필요한 모든 자제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고 전지판을 설치하고 배선들을 연결하는 일도 쉬웠다. 하지만 전기작업만 할 줄 알았지 정확하게 얼만큼의 전기가 몇 시간에 걸려서 배터리에 충전이 되며 배터리를 몇 시간이나 쓸 수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나와 혜아는 숫자와 계산에 약했고 전기 또한 숫자와 계산과 연관이 있었으니 막막했다.
복잡한 와트(w), 볼트(v), 암페어(Ah) 전기 원리는 제쳐두고, 전기를 물에 비유하면 아주 쉽게 전기 시스템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다.
암페어(Ah)는 펌프가 시간당 퍼낼 수 있는 물의 양을 뜻한다. 10 암페어가 빨대로 물을 빨아 올리는 거라면 100 암페어는 호스로 빨라 올린는 것이다.
볼트(Volt)는 펌프가 물을 퍼내는 압력, 즉 힘을 의미한다. 12 볼트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압력이라면 220 볼트는 소방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압력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와트(Watt)는 단순히 일정 시간 동안 전달되는 힘의 단위라고 보면 된다. 물 펌프가 한 시간 동안 얼마 만큼의 물을 한 시간 동안 어느 정도의 힘으로 퍼내는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암페어와 볼트를 곱한 것이 와트인 것이다.
우리 밴 위에 설치한 200와트의 태양열 전지판은 시간 당 최대 200 와트의 전기를 12 볼트로 생산할 수 있다. 이 전기는 MPPT를 거쳐 115Ah 짜리 레저 배터리에 충전된다. 115Ah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115 암페어(A)의 전기를 담고 있으며 115 암페어의 전기기구를 연결하면 한 시간 만에 방전이 된다는 뜻이다. 모든 전자제품에는 얼만큼의 전기를 소비하는지 표기가 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컴퓨터에 55Ah라고 쓰여 있다면 배터리에 연결했을 때 2시간 만에 방전된다는 뜻이다. 사실 일반적인 노트북 충전기는 1.5A 안팎의 전기를 소모하기 때문에 이론상으론 밤새도록 꽂아놔도 배터리가 방전될 일이 없다. 이제 115Ah 배터리를 완전충전 하는데 몇 시간이 걸리는지는 와트를 볼트로 나누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둘이 쓰기에 아주 딱 적당한 전기 시스템을 설치했다고 생각했지만 태양열 전지판과 배터리 사이에 연결한 MPPT, 그리고 레저 배터리는 이러한 이론과는 또 달랐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AA 배터리나 핸드폰 배터리는 리튬-이온 또는 리튬-마그네슘 배터리이다. 이 배터리는 완전충전과 완전방전이 가능한 배터리이지만 캠퍼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의 리튬 – 이온 배터리는 눈물이 날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우린 가장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납축전지(lead – acid battery)를 샀다. 납축전지는 완전충전을 하거나 완전방전을 하면 배터리가 망가지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MPPT가 완전충전이 되지 못하도록 막고 완전방전이 되기 전에 전원을 차단해 버린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실제 배터리의 60% 정도 밖에 쓰지 못하는 것이였다.
유럽의 여름은 해가 저녁 9시 넘게 떠 있어서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오후 4시 이전에 해가 지는 겨울에는 115Ah 배터리는 둘이 쓰기에 부족했다. 이런 MPPT의 역할은 상당히 거슬렸지만 낮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대한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전지판의 능력을 조절하고 배터리의 용량도 표시를 해주니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존재였다.
실내등과 물펌프는 12V 제품이여서 MPPT와 바로 연결했으며 핸드폰이나 컴퓨터 충전은 220V가 필요했으므로 MPPT에서 12V를 뽑아내 1500W 짜리 인버터를 통해 220V로 증폭 시켜 밴 벽면에 콘센트를 만들어 넣었다. 이 모든 선은 흔히들 부르는 ‘두꺼비 집’과 연결했는데 DIY 숍에서 퓨즈 스위치를 사서 전선을 연결하는 간단한 작업이였다. 이 또한 전기의 양극과 음극만 알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작업이였다.
부족하지만 행복하다.
지금 우리 밴의 전기는 부족하다. 200와트의 태양열 전지판은 낮에 145와트의 전기를 쓰는 아이맥을 쓰기에 충분하지만 동시에 배터리는 아주 조금만 충전이 된다. 게다가 해가 조금만 기울면 이마저도 힘들기 때문에 컴퓨터 작업 시간이 짧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서 날씨가 조금이라도 안좋으면 노트북 충전은 커녕 저녁 10시가 되기도 전에 전등까지 꺼지기 일쑤다.
전기가 부족할 때 마다 배터리를 더 사넣고 싶다거나 태양열 전지판을 더 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우린 전기가 부족하지만 그만큼 행복하다는걸 알았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카톡을 할 수 없고 노트북 배터리가 방전되서 유튜브를 볼 수 없을 때 우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자연속에서 우린 세상에 대한 생각을 나눴고 미래에 대해서 얘기했으며 서로의 꿈을 공유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밴라이프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가지고 사는게 아니라, 삶에 가장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부족하지만 행복하고 풍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