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토리#24] 소소한 여유로움은 없다

우리는 유명한 여행지와 잘 맞지 않는다. 이거 하나는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밴을 놓고 관광지를 여행 할라치면 혜아는 어딘가 아팠고 무언가 관람하러 가기로 하면 꼭 전날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이유로 싸웠다. 그래서 우린 제대로 여행을 하지 못한 적이 많았고 관람을 하지 못한 박물관들이 제법 있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한 검소한 여행이라고 애써 포장했지만 실상은…

블레드 호수 위 교회

[밴스토리 #23] 블레드 호수 위의 데이트

슬로베니아에 도착하고 난 뒤 우린 밴에 큰 문제점이 두 가지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밴을 샀을 때 부터 왠지 모르게 차의 왼쪽 앞부분이 기울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제대로 높낮이를 재어보니 아무래도 왼쪽 앞바퀴의 충격흡수장치가 고장난 듯 했다. 충격흡수장치는 특수한 액체로 채워져 있어서 일정한 높이로 차를 떠받치고 있는데 만일 금이 가거나 깨져서 액체가 새어나오면 힘을…

피렌체

[밴스토리#22] 단 한순간도 쉽지 않았다

밴을 구입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쉬운 적이 없었다. 난관을 넘으면 또다른 난관이 있었고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풀었다 싶으면 다시 꼬였고 꼬인건 한번 더 꼬였다. 그래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재미가 나름 있었기 때문에 사실 힘들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하지만 30도를 훌쩍 넘어가는 대낮에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 모기가…

스위스 국도

[밴스토리 #21] 지독한 이탈리아의 여름

자유롭고 행복한 우리의 밴라이프는 점점 고질적인 돈 문제에 의해 잠식되고 있었다. 자유롭지만 돈이 없어서 자유롭지 못하고 행복했지만 돈이 없어서 행복하지 못했다. 맛있는 음식이 많은 프랑스에서 지내도 맛있는 음식은 단 한번도 사먹지 못했고 박물관 입장권이 아까워서 들어가지 못했으며 아름다운 스위스에서는 얼음동굴로 올라가는 기차도 우린 산을 오르는게 싫다며 억지로 괜찮은 척을 했다. 괜찮았지만 괜찮지 않았고 행복했지만 행복하지…

[밴스토리#20] 현실은 언제나 잔인하다

밴라이프에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들을 보면 매일 아름다운 정박지에 차를 세우고 밴을 예쁘게 꾸민 뒤 예쁜 옷을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살것 같지만 실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들 마다 다를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전에도 설명했지만 보통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밴라이프를 풀타임으로…

[밴스토리#19] 뷰 오브 알프스에서 생긴 일

막 해가 떠오르고 있던 산 위의 정박지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눈 앞의 산등성이와 들판은 일출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저멀리로는 엄청난 크기의 하얀 산맥이 지나가고 있었다. 밴라이프를 하면서 몇 번 꺼낸 적 없던 카메라를 꺼내들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카메라 장비에 아무런 욕심이 없던 내가 이 날은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밴스토리#18] 없으니까 행복하다

우리가 밴라이프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획은 물론이고 목적지도 없었던 우리는 이동하고 싶을 때 이동했고, 쉬고 싶을 때 쉬었다.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렀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거나 생각없이 산다는 말은 아니다. 하고 싶은대로 하는 대신에 그 결정에 책임을 졌고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행동했다. 그리고…

[밴스토리#17] 드디어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난 모기가 싫다 난 모기를 정말 싫어한다.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한다. 모기에 대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모기에 쉽게 물리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혈액형은 O형이고 체온이 높으며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린다. 그리고 실제로 여름에는 모기에 정말 많이 물린다. 긴 옷을 입으면 안물린다고 하지만 난 더위도 많이 타기 때문에 긴팔 긴바지는 꿈도 못꾼다. 한국에서는 항상 몸에 바르는…

한여름 밴라이프

[밴스토리#16] 자연으로 돌아가다

한여름 자연 속 밴라이프란 파리를 떠나기 전 우린 작은 한인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품들을 채웠다. 파리에 들어올 때 보다는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은 더 있었으니 고추장과 된장 외에도 그동안 너무나 먹고 싶었던 것들을 조금 욕심을 내서 사기로 했다. 욕심을 내봤자 신라면과 불닭 볶음면 그리고 냉면 정도였지만 언제 다시 도시로 들어갈지 알 수 없으니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나…

[밴스토리#15] 빽 투더 밴라이프

3월 말 밴라이프를 시작한 이후 거의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밴을 떠나서 잠을 자게 되었다. 우리의 집이고 이동수단이며 너무나 사랑하는 보금자리였지만 수리를 하기 위해 며칠 동안 숙소에서 지내야만 한다는 것에 사실 우린 들떴다. 비용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정비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인 민박을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할 수 있고, 남이 해주는 한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