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란하고 평범한 4인 가족이었다.
고집스러운 경상도 여자였지만 똑똑하고 정많은 엄마와 무뚝뚝하고 고지식하지만 능력 있는 아빠.
이기적이고 차갑지만 유머가 있는 동생. 그리고 그 속에서 매일 멍하니 쓸데없는 생각만 하며 말도 안되는 계획들만 세우던 나.
하지만 가족들이랑 평생 한 집에서 하하호호 하며 살겠다는 오래 전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대기업에 취직한 동생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며 이제 나만 취직하면 실컷 놀러 다닐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하던 엄마는 불치병에 걸려 돌아가셨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대한민국의 산업역군으로 중동에서 열심히 돈을 버느라 어린 우리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아빠는 이젠 다 커버린 우리와도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하나 뿐인 동생은 출산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이 시기에 아들 딸 낳고 아등바등 사느라 얼굴을 보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 (물론 누구나 부러워 하는 외국계 기업에 취직해서 남부러울게 없이 살고 있어 다행이지만)
이렇게 되고나니 어느 날 갑자기 (사실 오늘) 친구 한 명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3학년 때, 나와 단짝이었던 그 친구는 고아였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애원에서 살고 있던 항상 까무잡잡하고 부시시했던 친구는 나 말고는 다른 친구가 없는 듯 했다. 친구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야 나와 같이 빈 운동장에서 뛰어 놀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는 놀이터 한켠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나에게 이상한 말을 했다. 사실 그 친구의 엄마 아빠가 다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나에게 ‘고아’는 엄마 아빠가 모두 돌아가신 아이들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다 살아 있는 내 친구가 고아라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4학년으로 올라가며 다른 반으로 배정 받은 우린 여전히 친한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두 손에 쥐고 온 그 친구는, “야 ‘고아’가 너랑 밥 먹으러 왔어!” 라며 날 큰 소리로 부르던 우리 반 부반장의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 뒤로 그 친구는 우리 반에 오지 않았고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반장’ 노릇을 하느라 바빴던 내 머릿 속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이제야 난 조금이나 그 때 그 친구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이 있는데 고아가 된 기분이라니…
얼마 전 혜아의 막내 동생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서 여섯 식구가 한 집에 다 모인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다 뭉클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시큰하고 우울했는데 아마도 그 기분이 아직 가시지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