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토리#30] 부다페스트 한복판에서 밴라이프

상점들이 문을 닫는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겨우 등유를 살 수 있었다. DIY숍도 갔었고 캠핑용품점도 갔었으며 심지어 자동차 부품점까지 갔었지만 설마 팔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길가에 덩그러니 있는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철물점에서 등유를 팔고 있었다. 겨울은 이제 시작이니 한참을 쓸 수 있을만큼 사야겠다는 생각에 1리터 짜리 PET 병에 든 등유를 10병 샀다. 이정도면 충분할 것…

[밴스토리#29] 첫 한겨울 밴라이프

처음으로 배터리가 방전이 되었던건 영국에서 밴을 구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터네이터(자동차 배터리를 충전해주는 모터 장치)가 고장났을 때 였다. 얼터네이터를 교체하고 나서는 문제가 없었고 한번 쯤은 방전될 수 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나서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 경찰이 빨리 차를 빼라고 재촉을 하는 와중에다행히 옆에 있던 캠핑카의 도움으로 다시 시동을 걸 수 있었지만 왜 방전이 되는지는 알…

[밴스토리 #28] 하나보단 둘, 둘보다는 셋

루크의 말에 따르면 그 두 까만 강아지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태어난 자매였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태어난지 삼 개월 정도된거 같다는 둘은 그동안 꼭 붙어다녔다는데도 성격이 완전히 달라보였다. 무릎 위에 매달려있던 아이는 엄청 활발했다. 내 몸에 달라붙어 있던 다른 강아지들에게 저리 가라고 소리를 치거나 쫓아내려는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반대로 내 발등 위에 누워 있던 아이는 별다른 움직임…

두브로브니크

[밴스토리 #27]사랑이에요

이때부터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미국에서 크로아티아로 강아지를 보내는게 그렇게 쉬울까 싶었는데 역시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급하게 재촉하는 그 주인의 태도가 무언가 깨름칙했다. 강아지를 어떻게 항공운송을 하는지 나도 정확히 아는게 없었지만 운송을 하기 위해서 운송회사까지 갔으면서 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강아지가 비행기에 실리기 직전에서야 통관에 필요한 금액을 보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밴스토리#26] 민박집 라이프

혜아와 내가 민박집 스태프 일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직업과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여행을 나오게 된 이야기를 민박집 식탁 앞에 맥주를 들고 앉아 듣는건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일과였다. 영국의 민박집에서 일할 땐 밤마다 맥주가 모자를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투숙객들과 함께…

[밴스토리#25] 크로아티아에서의 여름

어차피 밴라이프를 하며 여유로움을 즐겨본 적이 없으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분명 우리는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밴에서 살고 있는데 항상 바빴고 정신없었으며 고달팠다. 그러니 여유롭게 크로아티아를 즐기려던 계획이 틀어졌어도 언제나 그렇듯 우린 괜찮았다. 오히려 한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삼일 뒤에 스플리트에 도착을 하기로 계획을 바꾸고 민박집에 연락을 해 인터뷰 날짜를 앞당겼다.…

[밴스토리#24] 소소한 여유로움은 없다

우리는 유명한 여행지와 잘 맞지 않는다. 이거 하나는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밴을 놓고 관광지를 여행 할라치면 혜아는 어딘가 아팠고 무언가 관람하러 가기로 하면 꼭 전날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이유로 싸웠다. 그래서 우린 제대로 여행을 하지 못한 적이 많았고 관람을 하지 못한 박물관들이 제법 있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한 검소한 여행이라고 애써 포장했지만 실상은…

블레드 호수 위 교회

[밴스토리 #23] 블레드 호수 위의 데이트

슬로베니아에 도착하고 난 뒤 우린 밴에 큰 문제점이 두 가지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밴을 샀을 때 부터 왠지 모르게 차의 왼쪽 앞부분이 기울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제대로 높낮이를 재어보니 아무래도 왼쪽 앞바퀴의 충격흡수장치가 고장난 듯 했다. 충격흡수장치는 특수한 액체로 채워져 있어서 일정한 높이로 차를 떠받치고 있는데 만일 금이 가거나 깨져서 액체가 새어나오면 힘을…

피렌체

[밴스토리#22] 단 한순간도 쉽지 않았다

밴을 구입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쉬운 적이 없었다. 난관을 넘으면 또다른 난관이 있었고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풀었다 싶으면 다시 꼬였고 꼬인건 한번 더 꼬였다. 그래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재미가 나름 있었기 때문에 사실 힘들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하지만 30도를 훌쩍 넘어가는 대낮에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 모기가…

스위스 국도

[밴스토리 #21] 지독한 이탈리아의 여름

자유롭고 행복한 우리의 밴라이프는 점점 고질적인 돈 문제에 의해 잠식되고 있었다. 자유롭지만 돈이 없어서 자유롭지 못하고 행복했지만 돈이 없어서 행복하지 못했다. 맛있는 음식이 많은 프랑스에서 지내도 맛있는 음식은 단 한번도 사먹지 못했고 박물관 입장권이 아까워서 들어가지 못했으며 아름다운 스위스에서는 얼음동굴로 올라가는 기차도 우린 산을 오르는게 싫다며 억지로 괜찮은 척을 했다. 괜찮았지만 괜찮지 않았고 행복했지만 행복하지…